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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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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끝없이 피 흘린다

자본주의가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착각의 역사…

1·2차 세계대전 겪고도 여전히 살인을 멈추지 못하는 ‘선진’국가들
등록 2011-03-03 15:09 수정 2020-05-03 04:26

자본주의를 긍정하는 주류적 지식인의 한 가지 놀라운 특징은 이 세계에 대해 무한하다 싶은- 그러나 근거가 너무 희박한- 낙관이다.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진보’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그들은, 특히 자본주의의 황금기라고 할 19세기 후반 이후로는 빈번히 ‘산업 발전이 거의 자동적으로 전쟁 없는 세계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평화적 산업사회’라는 황당한 낙관

애당초 이런 낙관론을 대표한 사람은 근대 초기 동아시아에서 ‘적자생존’ 사회진화론의 원조로 꽤 유명했던 허버트 스펜서(1820~1903)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1837~1901)의 눈부신 자본주의 발전에 매료된 그는, 전통시대와 같은 ‘군사형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산업형 사회’로의 전환이 세계사의 철칙이라고 여겼다. 그에 따르면 산업형 사회에서는 인류사 초기 적자생존 법칙에 따라 필요했던 공격성은 모조리 근면성으로 승화될 것이고, 전쟁은 점차 멈출 것이었다. 그러나 스펜서가 죽기 4년 전, 산업형 사회를 대표하던 그의 조국 대영제국은 남아프리카의 보어공화국들을 침략했다. 이 꼴을 본 그는 “조국을 수치스럽게 느낀다”고 공언했는데, 과연 그는 무덤으로 가기 전 자본주의 미래에 대한 자신의 낙관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이해했을까?
동아시아에 그다지 관심이 없던 스펜서가 어느 정도 인식했는지는 알 수 없는데, 1886년 이라는 데뷔작에서 차후 일본이 평화주의적 산업국가가 될 것으로 내다봤던 일본의 유명한 ‘스펜서주의자’ 도쿠토미 소호(1863~1957)는 이미 1890년대 중반 이후로는 골수 침략주의자로 전향했다. 스펜서를 놀라게 한 보어전쟁도, 대영제국의 동맹국이 돼가는 일본의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이 군사주의로 전향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스펜서의 기대와 어긋나게, 20세기 초반 자본주의의 특징은 ‘평화 지향’이 아닌 치열한 패권 투쟁과 전쟁의 기계·산업화였다.

» 자본주의적 선진국 사이의 무력 충돌은 1945년 이후로는 거의 없었지만, 패전국 독일과 일본을 제외한 대다수 서구 열강들은 계속 세계체제 주변부에서 피를 흘렸다. 말레이시아 ‘공비 용의자’를 포로로 잡아 군영으로 돌아가는 영국군과 현지 용병들.www.bigdogdotcom.wordpress.com

» 자본주의적 선진국 사이의 무력 충돌은 1945년 이후로는 거의 없었지만, 패전국 독일과 일본을 제외한 대다수 서구 열강들은 계속 세계체제 주변부에서 피를 흘렸다. 말레이시아 ‘공비 용의자’를 포로로 잡아 군영으로 돌아가는 영국군과 현지 용병들.www.bigdogdotcom.wordpress.com

약 3700만 명을 사망자 내지 불구자로 만든 제1차 세계대전의 미증유의 도살 이후로 주류 자유주의자들의 낙관은 좀 시들 만도 했지만, 실제로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1920년대의 수많은 사상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살육이 인류에 큰 교훈이 되어 전쟁에 대한 반감을 내면화하고 또 하나의 세계적 대전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믿었다. 대표적으로는 자유주의 사상가로서 스펜서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그리고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까지 꽤나 유명했던-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이 있다. 그는 1923년 에서 문명을 멸망시킬 또 하나의 세계대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선진적 구미권’이야말로 “사회주의적 사회조직이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는 점을 간파한 다수에 의해 혁명도 없이 ‘자연스럽게’ 사회주의·국제주의를 지향하는 사회가 될 수 있으리라고 전망했다.

국제주의와 세계의 통일, 세계 정부에 대한 러셀의 열망을 고상했다고 평가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세계를 산업문명의 발전을 바탕으로 한 평화로 이끌 구미권”에 대한 그의 기대가 얼마나 순진했는지는 러셀 스스로 결국 알게 됐을 것이다. 그는 1966년 미국이 베트남에 저지른 범죄를 심판할 ‘국제재판’을 조직하고 베트남 침략을 규탄하면서 말년을 보냈다.

가자지구의 참극은 평화를 위한 것이었나

당시 열강들의 움직임은 1920~30년대 자유주의자들의 기대를 일부 뒷받침해줬다. 미국과 프랑스 등은 1928년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전쟁을 거부한 켈로그-브리앙 조약을 체결하는 등 민간 지식인들의 평화주의에 응수했다. 이 평화주의 모드는 긍정적 기여도 많이 했다고 봐야 한다. 특히 서구 교사들 사이에서는 ‘군사주의 선전은 바로 범죄다’ 같은 의식이 널리 퍼졌다. 프랑스판 전교조 격인 전국교사조합(SN)은 민족주의적 역사 교과서들을 거부하는 캠페인을 벌여 많은 학생들에게 반전 의식을 심어주었다. SN이 거부한 역사 교과서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자국 군인을 영웅으로 미화하고 승리의 위대함을 부각해 전쟁의 고통을 숨겼다.

그러나 러셀의 국제주의적 설교도, 켈로그-브리앙 조약 같은 외교 문서들도, 수많은 일선 인텔리들의 평화주의 교육을 위한 투쟁도 새로운 살육의 도래를 막지는 못했다. 러셀의 관념주의적 관점과 달리, 살육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민족주의적 광신’이라기보다 바로 그가 기대를 걸었던 선진 자본주의 사회·경제 조직의 특성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많은 6천만~7천만 명을 죽이거나 불구자로 만들었다. 이런 참극은 자유주의적 주류 지식인들에게 모종의 교훈을 줄 만도 했는데, 이 또한 실제로는 꼭 그렇지 않았다. 자본주의를 철폐시키지 않고서도 전쟁을 극복할 수 있다고 끝까지 믿고 싶어하는 이들은 1970~80년대에 ‘민주적 평화’라는 이론을 또다시 생산·유포했다. 그들의 이론은 이렇다. 자본주의 사회가 민주적 형태를 띨 경우, 즉 전쟁으로 득을 볼 게 없는 다수가 선거를 통해 ‘평화라는 합리적 선택’을 한다면 전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192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에서 ‘세계 개조의 철학자’로 유명하던 버트런드 러셀은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평화스러운 국제주의와 사회주의로 혁명 없이 진화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선험적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듯하다. www.nndb.com

» 192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에서 ‘세계 개조의 철학자’로 유명하던 버트런드 러셀은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평화스러운 국제주의와 사회주의로 혁명 없이 진화할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은 선험적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듯하다. www.nndb.com

이들의 주장은 소련의 위협과 미국의 절대적인 군사적 우위의 냉전 상황에서 전쟁까지 벌일 형편이 되지 못한 구미권 국가들의 평화에 착안해서 만들어졌다. 물론 베트남 침략 등 ‘민주국가’들의 제3세계 침공은 문제로 삼지 않았다. 구미권 주류의 입장에서 서방 제국들의 표적이 되는 제3세계 정권들은 민주주의와 무관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 이론을 맹신하는 상당수 자유주의 성향의 학자들은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세르비아 침공도 특별히 문제 삼지 않았다. 세르비아가 ‘우리’의 민주주의 표준에 미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발칸반도의 기준으로 본다면 밀로셰비치 정권 시절의 세르비아는- 비록 상당한 제약은 있었지만- ‘권위주의’보다 ‘제한적 민주주의’에 가까웠다. 2009년 벽두에 ‘민주국가’ 이스라엘로부터 끔찍한 침공을 받은 가자지구를 통치한 하마스도- 그 통치 방식은 권위주의적 측면도 내포하지만- 분명히 민주적 선거를 통해 탄생한 정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득해도, 자본주의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다당제 민주주의가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본질상 평화를 담고 있다는 그들의 믿음은 사실이 아닌 선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애국주의로 포장된 군사주의

일리가 있는 부분도 있다. 자본주의 발전이 장기적인 ‘상대적 평화’, 즉 열강 사이의 무력 충돌이 없는 기간을 가져다주곤 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먼저 조선은 1658년의 제2차 나선(羅禪) 정벌부터 1866년의 병인양요까지 이렇다 할 만한 외전(外戰)을 겪지 않았는데, 동아시아적 세계체제인 조공체제의 높은 안정성으로 이미 전근대에 장기 평화를 경험하긴 했다. 그러나 거의 20~30년에 한 번씩 큰 외전을 치른 절대왕권 시대를 거친 유럽으로서는 ‘자본주의적 평화’는 참신하고 좋았다.

물론 이는 상대적일 뿐이었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말에는 선진 산업국가들 사이의 무장 갈등이 극히 적었음에도 세계 주변부에 대한 침공은 빈번했다. 영국은 1854~56년 크림전쟁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사이, 반세기 넘게 다른 열강들과 큰 무력 갈등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인도 독립투쟁 진압(1857), 가나 아샨티족과의 전쟁(1863~64), 남아프리카 줄루족과의 전쟁(1879), 제2차 아프가니스탄 침공(1878~80), 수단 독립투쟁 진압(1896~98), 보어전쟁(1899~1902) 등 영군군은 세계 주변부에서 끝없는 살육을 벌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열강과의 무력 충돌은 없었어도, 한국전쟁(1950~53), 케냐의 ‘마우마우’ 독립투쟁 진압(1952~56), 말레이시아 공산당 독립투쟁 진압(1948~60)부터 현재 진행 중인 아프가니스탄 침략까지, 주변부에서 끊임없이 피를 흘려왔다.

열강과의 대대적 충돌만을 전쟁으로 여기는 데 익숙해진 영국인 대다수는 이들 크고 작은 전쟁에 그다지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장차 서방 블록과 중국 사이의 갈등이 고조되고 충돌의 위험성이 가시화된다면 전쟁 위험성에 대한 서방인들의 감수성이 조금 높아질 것이라 기대해봐야겠다.

열강들 사이의 충돌이 없는 것을 평화라고 착각하는 다수 구미인들의 그릇된 상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과연 우리는 지금 평화로운 세계에 살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1990년대 한때 경감됐던 세계 군비 지출액은 지난해 냉전시절 말기의 수준(1조6천만달러)을 회복(?)하고, 계속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대한민국만 해도 2000~2009년 군비 증가율이 약 48%에 달해 영국(28%)이나 브라질(30%) 등 우리보다 경제력이 더 좋은 나라들을 압도했다. ‘아덴만 여명 작전’의 의심스러운 ‘성공’을 들어 애국주의 광풍을 조작해보려 한 이명박 정권의 사례처럼, 수많은 나라에서 군사적 애국주의는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장한다. 미국만 해도 대다수가 폭력·전쟁을 소재로 하는 컴퓨터·비디오 게임의 판매고가 1996∼2009년 4배나 늘어, 약 68%의 미국인들이 이를 습관적으로 즐긴다. 대량 도살의 준비가 자본주의 경제 ‘성장’을 뒷받침해주고, 군사주의는 계속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하고, 오락화된 폭력은 우리 일상 속으로 깊이 스며든다. 이건 결코 평화로울 수 없는 자본주의적 세계의 현실이다.

‘국가의 살인’에 안녕을 고할 순 없는가

스펜서부터 민주적 평화 이론까지, 자본주의를 ‘평화의 도구’라고 옹호해온 낙관론자들의 환상과 다르게, 이윤 추구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사회적 제도가 존재하는 이상 ‘국가의 살인’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문제 삼지 않는 이상, 반전·평화 투쟁은 결국 도덕적 의분 수준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그 의분은 물론 존경스럽다. 그러나 과연 의분만 가지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에서 미국의 포탄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이들을 살릴 수 있을까?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그동안 ‘박노자의 국가의 살인’을 애독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박 교수는 이번호로 연재를 마치고, 잠시 휴식 기간을 거친 뒤 새로운 주제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옵니다.



참고 문헌
1.〈The Prospects of Industrial Civilization〉 Bertrand Russell, Routledge, 1996[1923]
2.〈Intellectuals and Society〉 Thomas Sowell, Basic Books, pp.203∼281, 2009
3.〈Ways of War and Peace〉 Doyle, Michael W., New York: W. W. Norton, pp.251∼315, 389∼455, 1997
4.〈Big Wars and Small Wars: The British Army and the Lessons of Wars in the 20th Century〉 Hew Stracham (ed.), Routledge, pp.84∼11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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