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주 연속 유기농 점심을 먹는 호사를 누렸다. 취재 때문이었다. 무상급식 특집을 준비한다고 경남 합천과 충남 아산, 경기 과천을 찾았다. 남정초등학교, 송남초등학교, 관문초등학교. 세 곳에서 모두 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팥밥에 동태찌개, 청포묵 무침, 미니폭찹, 국수 등을 먹었다. 취재 때문에 맛을 음미할 여유까지는 없었다. 식판에 코를 박고 먹는 아이들의 모습만은 마냥 아름다웠다.
어디 가나 아이들은 낯선 사람을 알아봤다. 수줍은 아이들은 나를 피했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부르지 않아도 다가왔다. “아저씨 누구세요?”가 보통 첫 물음이었다. 낯선 아저씨의 정체가 풀리면 그다음 질문은 아이마다 조금씩 달랐다. 관문초등학교 1학년 2반 교실에서는 “내 이름이 뭐게요?” 놀이가 벌어졌다. 10여 명의 아이가 번갈아 다가왔다. 아예 줄까지 섰다. 아이들은 낯선 아저씨가 자기의 이름을 불러주면 즐거워했다. 두 번째 질문이 “기자가 뭐예요?”일 때가 있었다. 취재를 하러간 입장인데 어린 취재원들에게 취재를 당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아이들의 집요한 질문에 꼬박꼬박 답하면서 왠지 내가 조금은 선량한 어른이 된 것 같은 근거 없는 생각에 흐뭇하기도 했다. 물론 내 뒤통수를 바라보는 선생님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꿍꿍이가 없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게다. 어디든 취재원에게 ‘밉상’이 돼서 취재가 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엇보다 아이들이 예뻤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지지배배 떠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귀여웠다. 매일 아이들과 실랑이를 하는 선생님들 눈에는 달리 보일 때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털이 하얀 예쁜 강아지 같았다.
내가 ‘강아지’들을 만나러 합천까지, 아산까지 찾아간 이유는 아이들이 먹는 밥값을 누가 내느냐를 둘러싼 어른들의 싸움 때문이었다. 어떤 어른은 세금으로 아이들의 모든 밥값을 충당하자 하고, 또 어떤 어른은 부잣집 아이들은 각자의 돈으로 사먹게 하자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치만 따지면 후자의 얘기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선생님들은 “무상급식을 하니 급식비를 못 낸 아이들을 채근하지 않아서 좋다”고 약속한 듯이 말했다. 저소득층을 골라내서 지원한다고 해도 급식비를 못 내는 아이가 꼭 생긴다는 말이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쪽은 문제를 감정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취재 과정에서 들은 한 경제학자의 얘기가 떠올랐다.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고등학교 시절 등록금을 내지 못해 교실에서 혼자 일어서야 했단다. 그 경험은 아픈 기억으로 그에게 남았다.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논리의 저편에 그의 체험이 자리잡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기억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틀린 생각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만 무상급식을 이야기할 때, 한 번쯤은 누군가의 가슴에 새겨질 푸른 멍을 ‘감정적’으로 떠올리거나 상상하는 것도 좋겠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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