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즐겨보던 가 방송을 타지 않은 지 한 달이나 되어간다. 만 그런 게 아니다. 예능이라고 불리는 오락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결방이다. 이유는 숨진 천안함 장병들을 위한 애도 때문이란다. 슬픈 일이 일어났으니 애도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애도가 얼마나 진정성을 가졌는지 의심스러운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예능 프로·뮤직비디오 규제애도라는 것은 상실의 대상과 자신을 분리시키는 심리 상태다. 이런 분리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상실의 슬픔에 자신을 내맡겨버리지 않기 위한 자기 보전의 욕망이 애도를 밀고 가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애도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다. 누가 시켜서 애도를 하는 게 아니라 상실의 아픔을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애도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언론과 방송을 뒤덮고 있는 애도의 깃발들이 말 그대로 애도와 상관없는 ‘깃발’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 애도가 충분하지 않아서 그렇다기보다 애도가 과하게 넘쳐나서 그런 것 같다. 슬픔을 덜어주는 것이 애도의 기능이라면, 이 상황은 오히려 없는 슬픔까지 몽땅 끌고 와서 ‘국민’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려는 행태처럼 보인다.
사정이 이러니 북풍 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듯이, 현 정부가 북풍을 이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정부보다도 한나라당 일부 의원과 보수 언론인 것 같다. “지난 정권 10년 퍼주기가 어뢰로 돌아왔다”는 나경원 의원의 발언은 정확하게 이런 상황의 원인을 설명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진부한 레퍼토리를 되풀이하는 게 자기들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가 바로 이런 근엄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원인인 것이다.
와 예능 프로그램만 전파를 타지 못하는 게 아니다. 최근 제작한 이효리의 뮤직비디오가 ‘도로교통법’을 위반하는 내용 때문에 방송 불가 처분을 받은 사실은 또 어떤가. 머리카락과 치마 길이까지 규제했던 1970년대를 연상시키는 촌스러운 보수주의가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셈인데, 확실히 이런 개별 사안들은 별스럽지 않게 지나치기 어려운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권위주의적 체제가 코미디를 싫어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물론 히틀러가 찰리 채플린이나 미키마우스를 즐겨봤다는 사실과 이 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개인의 취향이 체제의 특성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 개인이 ‘북풍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 체제가 북풍을 호명하는 건 다른 문제다. 그래서 나 예능 프로그램이 한 달 동안이나 텔레비전에서 종적을 감춘 것을 이명박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초월적 범주로 북한을 호출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주지 못한다. 톡 까놓고 말해서 진짜 북한의 소행이라면 상황은 더 재난에 가깝지 않은가. 백령도라면 최전방인데, 거기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함정에 구명조끼조차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북한보다 더한 핑계를 대더라도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보수 언론은 구멍 난 ‘국민’의 안보의식을 개탄할 게 아니라, 구태의연한 자신들의 레퍼토리를 먼저 되짚어봐야 하는 게 아닐까.
북풍, 보수주의의 복음가 쏟아낸 주옥같은 풍자들이 이들에게는 그냥 ‘저질 코미디’로 보인 까닭이 이것이다. 시종일관 자신들은 안보관이 투철하고 북한에 대한 대적관이 뚜렷한데, ‘국민’이 그렇지 못하다고 믿는 이상한 엘리트주의가 이들의 주장에 배어 있는 것이다. 북풍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말해도, 이들의 정신 상태가 계속 이 수준에 머무는 한 현실은 반대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 북풍은 한국 보수주의자들에게 복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어뢰는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부재원인’의 현신 같다. 가 사라져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이 욕망하는 현실이 개그맨의 대사들처럼 말도 되지 않는 억측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가 금지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부재하면서도 여전히 우리를 웃겨주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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