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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21] 알고 보면

등록 2010-04-14 14:29 수정 2020-05-03 04:26
강남 삼성본관 앞에서 반도체노동자의 건광과 인권지킴이 '반올림'회원들을 삼성본관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추모행진을 하고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강남 삼성본관 앞에서 반도체노동자의 건광과 인권지킴이 '반올림'회원들을 삼성본관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추모행진을 하고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문장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을 때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중국행 저가 항공 비행기, 무사히 착륙하면 절로 박수가 터져나온다고 했던가? 을 가방에 넣으며 ‘지금 죽는다면?’이란 생각을 했다. 나는 내 인생의 모든 날을 휴일처럼 아름답게 사용했는가. 그만큼의 여유를 갖고 살고 있는가.

“내일 죽는다는 생각으로 사랑할 게 아니라면 차라리 사랑하지 마.”

라는 손발 오그라드는 멘트를 내 입으로 날린 적이 있다. 상대는 “그러겠노라”고 했고 너무 열심히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은 3개월 만에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그에게 상처주는 말을 내뱉고,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던 지난 3년을 떠올려본다. 나야말로 내일 죽는다는 생각으로 그를 사랑하며 살았는가.

이런 생각에 빠진 것은 박지연씨의 죽음 때문이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 노동자였던 그는 18살에 입사해 20살에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고 23살에 죽었다. 어머니는 식당일을 했고 아버지는 술에 취해 살았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는 오열했고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장례식장 밖 한쪽 구석에 아버지가 무너진 찰흙처럼 앉아 있었다. “안 죽을 거 같았는데… 정말이야… 갑자기 왜 이래… 정신이 없어.” 그 순간, 그는 어린 딸이 벌어오는 공장 노임으로 술을 사 마시곤 했던 자신의 인생을 후회했을까. 후회했더라도, 너무 늦었다.

“남편한테 입맞춤 한 번만 해보고 싶었는데, 못하고 보냈어.”

장례식장 앞, 역시 5년 전 백혈병으로 남편을 잃은 정애정씨의 말에 나는 그만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부부는 함께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일했다. 남편 황민웅씨는 급성림프구성백혈병에 걸려 숨졌다. 마지막까지 병원 중환자실에 있었던 탓에 남편을 만날 때면 가운을 입고 장갑을 껴야 했다. 백혈병 환자는 면역력이 떨어져 신체접촉 금지다. 정씨는 “백혈병은 정말 나쁜 병”이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렇게 지켜만 보다, 입맞춤 한 번 못하고 남편을 보냈다.

일상에 치이다 보면 휴일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휴지 조각처럼 써버릴 때가 있다. 소중한 사람에게 막 대해놓고 죽고 나면 피눈물을 흘릴지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박지연씨의 장례식이 너무 슬퍼서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다. 사랑하고 살자.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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