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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절반의 진실이 드러났을 때


국방부 “외부 폭발 가능성” 밝힌 뒤 ‘외부 폭발 → 북한 어뢰 → 단호한 조처’ 단순 논리 목소리 높아져
등록 2010-04-22 17:01 수정 2020-05-03 04:26
천안함의 반쪽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외부 폭발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를 북한 어뢰 공격설로 등치시키는 단순 논리는 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천안함의 반쪽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외부 폭발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를 북한 어뢰 공격설로 등치시키는 단순 논리는 안보를 위협할 수도 있다. 한겨레 김봉규 기자

천안함 진실의 반쪽이 물 위로 떠올랐다.

4월15일,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20일 만이다. 이날 인양된 함미(배꼬리)에서는 실종자 36명의 주검이 발견됐다. 침몰 원인을 찾는 작업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민간 전문가 10명이 포함된 민군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 38명은, 군이 군사기밀 누출을 이유로 사고 부분을 그물망으로 가린 함미에 들어가 선체 구조와 폭발 유형을 조사했다.

다음날 오전 국방부 브리핑룸. 민군합동조사단장인 윤덕용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재료공학)가 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윤 단장은 “선체 절단면과 선체 내·외부 육안 감식 결과 내부 폭발보다 외부 폭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그동안 어뢰 혹은 기뢰에 의한 외부 폭발 가능성이 유력하게 검토돼왔으나 군과 합조단이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폭발력이 왼쪽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나와”

합조단이 침몰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도, 그동안 언론과 인터넷 누리꾼이 이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과 동일했다. 침몰 원인으로 제기된 여러 가설을 하나씩 지워가는 방식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합동조사단원들은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선체의 절단면과 내부·외부를 직접 눈으로 봤다는 점이다. 윤 단장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내부 폭발 △암초에 의한 좌초 △선체 노후에 따른 피로 파괴 가설을 하나씩 지워가는 과정을 밟았다.

“함미 탄약고, 연료탱크, 디젤엔진실에는 손상이 없었고 가스터빈실의 화재 흔적이 없었으며, 전선 피복 상태가 양호하고 선체의 손상 형태로 볼 때 내부 폭발에 의한 선체 절단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판단했다. 해도와 해저 지형도 등을 확인한 결과 침몰 지점에 해저 장애물이 없고 선저(배 아랫부분)에 찢긴 흔적이 없어 좌초에 의한 선체 절단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판단했다. 피로 파괴의 경우에는 선체 외벽을 이루는 철판이 단순한 형태로 절단돼야 하나, 선체 외벽의 절단면은 크게 변형돼 있고 손상 형태가 매우 복잡해 피로 파괴에 의한 선체 절단 가능성도 매우 제한된다.” 윤 단장의 말이다.

그렇다면 침몰 원인은 어뢰 혹은 기뢰에 의한 외부 폭발로 좁혀진다. 합조단의 1차 조사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느냐의 반론은 가능하다. 그러려면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나 근거가 있어야 한다. 군이 결론을 내려놓고 합조단에 참여한 민간 전문가들에게 선체를 둘러본 조사 결과를 특정한 방향으로 주문했거나 함미가 가라앉아 있던 지난 20일 동안 증거를 왜곡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만큼, 외부 폭발이라는 잠정 결론과 “최종적인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함수를 인양하고 잔해물을 수거한 후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세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합조단의 신중한 태도는 신뢰할 만하다.

외부 폭발의 원인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은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된 공식 브리핑 이후에 이어졌다. 윤 단장은 기자들에게 “왼쪽 흘수선(선체가 물 위에 떠 있을 때 배와 수면이 접하는, 경계가 되는 선) 아래 수중에서 터진 것 같다. 폭발력이 왼쪽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나와 오른쪽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수중 폭발 때 생긴 거센 물충격파가 함체 바닥 철판을 안쪽으로 밀어넣으며 위쪽으로 치솟은 뒤 오른쪽으로 분출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폭발체가 무엇인지는 특정하지 않았다. 그는 “어뢰가 선체를 뚫고 들어간 것은 아니고 버블제트로 보인다. 기뢰인지 어뢰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버블제트는 어뢰나 기뢰가 함정 아래쪽 수중에서 폭발할 때 발생하는 강한 충격파와 고압의 가스 거품을 말한다. 이 거품이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며 함정을 들어올렸다가 떨어뜨리면서 그 충격으로 함체가 두 동강 날 수 있다. 이런 버블제트 효과는 어뢰와 기뢰 모두에 의해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한나라당 “4조원이 어뢰로 돌아왔다”

그런데 군 쪽은 어뢰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둔다. 근거는 두 가지다. 어뢰에는 추진체가 달려 있어 목표를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는 점, 폭발 지점이 함정 아래가 아닌 왼쪽 하단부라는 점이다. 그래서 백령도 먼 바다에서 서북쪽을 향하던 천안함을 향해 북한의 잠수함 또는 잠수정이 어뢰를 발사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등도 외부 폭발에 의한 침몰 가능성이 높아지자, 뚜렷한 증거도 없이 어뢰 공격설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한나라당도 맞장구를 쳤다.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뛰어든 나경원 의원은 4월16일 원음방송에 출연해 “북한에 의한 것으로 약 80% 강하게 추정되고 있는데 결국 지난 10년 동안 4조원을 북한에 퍼준 것이 어뢰로 돌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에서 정부의 음모 운운하면서 북한 개입 부분을 급하게 아예 차단했던 점은 명백한 이적 행위로 이에 대해 정세균 대표는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인 정옥임 의원도 “상식적으로 그 바다에서 우리 해군을 향해 바다 밑에서 몰래 어뢰를 쏠 수 있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측면에서 북한이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대북단체 회원들은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대북전단을 날려 보내는 대형 풍선에 “천안함 복수하자!”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들에게 외부 폭발은, 곧 북한의 어뢰 공격과 동의어인 셈이다.

이 집단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천안함 사고 직후인 3월27일 전직 해군 최고위급 인사들이 긴급하게 모였다.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사였기 때문에 정보를 교환하고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은 미리 준비해온 북한 규탄 결의문을 공동 명의로 채택하자고 주장했다. 안 전 총장은 를 통해 줄곧 북한 어뢰설을 강변해온 인사다.

지난호(806호) 표지이야기에서, 사고 해역 주변 유실 기뢰에 의한 사고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던 전직 해군 최고위급 인사는 “폭약에 의한 외부 폭발로 침몰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어뢰 공격설을 배제할 이유는 없지만 사고 해역 주변이 폭약이 많은 곳인 만큼 특정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과의 통화에서 “무기전문가는 아니지만 북한 문제 전문가로서 면밀하고 치밀한 분석 없이 북한의 소행으로 몰아가는 분위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알아봤다"며 “미국 등에 있는 다수의 어뢰 전문가들은 ‘완전한 버블제트 어뢰는 미국만 가진 것으로 아는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난무하는지 궁금하다’고 하더라”고 밝혔다.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폭탄

천안함의 나머지 절반의 진실은, 아직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뱃머리(함수)를 건져 올리고 폭발 원인을 드러내줄 파변·잔해 분석 작업을 마친 뒤에 온전해질 수 있다. ‘외부 폭발 → 북한 어뢰 → 단호한 조처’로 이어지는 단순 논리는, 안보를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평화와 안보를 위협하는 폭탄이 될 수도 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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