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새로 벌인 일이 좀 많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설거지다. 매달 넷쨋주 토요일 오후, 나는 친구 셋과 함께 서울의 한 보육원에 설거지를 하러 간다.
‘자원봉사’라는 거창한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일은 지난 연말 모임에서 급작스럽게 결정됐다. 내가 말을 꺼내놓자마자 친구들은 “어디로 갈지 당장 찾아내라”고 재촉해댔다. 어디든 전화만 하면 받아줄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자원봉사센터에는 주말 자원봉사 신청자가 줄을 서 있었고, 몇몇 구청의 사회복지과에선 “평일에 오실 분이 필요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보름을 찾아헤매다(물론 인터넷과 전화로) 장애아 50여 명이 살고 있는 이곳과 연결이 됐다.
봉사자 관리를 맡은 사회복지사가 물었다. “봉사자 분들이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을 선호하셔서, 지금은 하실 수 없어요. 주방팀에 설거지 도와주실 분이 필요한데 괜찮으시겠어요?” 정이 들면, 사정이 생겨 못 갈 경우 아이들이 속상해할까봐(실은 우리가 정을 못 뗄까봐) 걱정돼 어차피 빨래나 설거지를 하려던 우리였다. “물론이죠.” 사회복지사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 “주방팀은 일이 힘들어서 그런지 봉사자 분들이 꺼리기도 하고, 가서도 금세 그만두시거든요….” 자원봉사의 세계에도 ‘등급’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팀 이름을 정해오라기에 몇 차례 온라인 회의 끝에 ‘우유탐탐’으로 지었다. 4명 모두 우유부단하지만, 각각 식탐·일탐·잠탐(‘잠수타기’)·알탐(술)으로 탐닉하는 분야가 다르다는 뜻이다. 어쩐지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이름을 들고,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한다는 기분으로 그곳에 갔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자원봉사자 카드를 만들었고, 몇 시간 일했는지 일지를 쓰라는 안내를 받았다. 자원봉사 인증센터에 등록이 되면, 어디서든 내가 몇 시간이나 봉사를 했는지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기업 인사고과나 학교 성적에 자원봉사를 반영할 때 이걸 활용한다고 했다. 왜 주말에만 봉사자가 몰리는지 의문이 풀렸다. 조금 씁쓸했다.
숟가락이 식판을 지나 입으로 올 때쯤엔 숟가락 위 밥알이 반으로 줄어버릴 만큼 몸이 불편한 아이들이지만, 퇴식구에 제 식판을 갖다놓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퇴식구와 연결된 개수대에서 내가 “고맙습니다~” 하면 내 쪽으로 물잔을 밀치며 장난치는 녀석도 많았다.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씩씩하고 밝은 그 녀석들은 종종 입양을 간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라고 했다.
설거지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캄캄했다. 보육원 앞의 아파트 단지, 집집마다 빛나는 불빛은 따뜻해 보여서 시렸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한덕수 권한대행 탄핵정국을 ‘농단’하다
[단독] “국정원, 계엄 한달 전 백령도서 ‘북 오물 풍선’ 수차례 격추”
얼큰하게 취한 용산 결의…‘나라를 절단 내자’ [그림판]
여고생 성탄절 밤 흉기에 찔려 사망…10대 ‘무차별 범행’
[단독] 권성동 “지역구서 고개 숙이지 마…얼굴 두껍게 다니자”
끝이 아니다, ‘한’이 남았다 [그림판]
‘아이유는 간첩’ 극우 유튜버들 12·3 이후 가짜뉴스·음모론 더 기승
받는 사람 : 대통령님♥…성탄카드 500장의 대반전
육사 등 없애고 국방부 산하 사관학교로 단일화해야 [왜냐면]
‘김예지’들이 온다 [똑똑! 한국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