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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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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폰·무가지, 공짜 아니거든요


때때로 현실을 위장하는 숫자화된 돈…
수학적 합리성 중요하지만 숫자 자체에 대한 집착은 오류로 이어져
등록 2010-03-17 14:54 수정 2020-05-03 04:26

지난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이상화 선수는 여자 500m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독일 선수를 0.05초 앞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0.05초! 그 시간은 우리 일상에서 거의 의식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아니 그보다 훨씬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동작의 변화를 육안으로 분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운동경기에서는 초정밀 계측 장치 덕분에 그 차이를 정확하게 판독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는 과학 발달과 함께 진척돼왔다고 이야기된다.

숫자화된 돈은 간명하게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는 데 유용하지만, 종종 현실을 위장해 반영한다. 공짜폰을 가능하게 하는 통신사의 마케팅 비용은 결국 소비자가 낸 통신요금에서 나온 돈이다. 무가지 또한 주 수익원인 광고비의 원천은 소비자가 낸 물건값이다. 둘 다 진정한 공짜는 아니란 얘기다. (왼쪽부터) 한겨레 이정아·<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숫자화된 돈은 간명하게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는 데 유용하지만, 종종 현실을 위장해 반영한다. 공짜폰을 가능하게 하는 통신사의 마케팅 비용은 결국 소비자가 낸 통신요금에서 나온 돈이다. 무가지 또한 주 수익원인 광고비의 원천은 소비자가 낸 물건값이다. 둘 다 진정한 공짜는 아니란 얘기다. (왼쪽부터) 한겨레 이정아·<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돈이 절대적 가치를 담보한다는 막연한 믿음

근대과학의 핵심에는 수학이 있다. “자연은 수학이라는 책으로 쓰여 있다”라고 말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부터,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 중 수학적 정의를 빼고 절대적인 것은 없다”라고 말한 의 저자 칼 세이건에 이르기까지 과학자들은 수학을 모델로 사물을 파악해왔다. 과학 영역에서만이 아니다.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에 숫자는 곳곳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국가 정책이나 전문가들의 토론에서 통계 자료는 확실한 근거로 여겨진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각종 수치를 간간이 삽입하면 왠지 유식해 보이고 설득력이 한결 높아진다.

생각해보면 아라비아숫자는 알파벳보다도 보편적인 문자다. “우리 아이가 이번에 1등 했어요.” 이 한마디로 자식 자랑은 끝난다. “한국은 도대체 살기가 팍팍해요.” 그렇게 말하는 대신 자살률을 비교하면 확연해진다. 우리가 숫자를 가장 많이 따지는 것은 역시 돈과 관련된 일이다.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따질 때 액수를 제시하면 금방 가늠이 된다. 사람의 능력은 그가 받는 월급이나 연봉으로 간단하게 비교된다. 그리고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의 평수와 가격은 곧 행복의 등급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과연 돈으로 나타나는 숫자는 본질을 얼마나 반영하는 것일까? 경제학에 ‘화폐 환상’(money illusion)이라는 개념이 있다. 액면가를 구매력이나 가치로 동일시하는 착각을 말한다. 그래서 인플레이션 때문에 실질임금은 떨어졌는데도 명목임금이 그대로 유지되면 노동자가 별로 저항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물가가 5% 오를 때 임금이 2% 오르는 상황, 그리고 물가가 2% 오를 때 임금은 그대로인 상황이 있다고 하자. 합리적으로 계산하면 노동자에게는 전자보다 후자가 이득인데, 실제로는 전자의 경우를 더욱 선호한다는 것이다. 돈이 절대적인 가치를 담보한다고 막연하게 믿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이외에 근무 여건도 고려될 수 있으리라. 예를 들어 월급이 5%로 올랐는데 야근이 늘어나 결국 10% 더 오랫동안 근무해야 한다면, 월급은 오히려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근로시간을 그대로 하고 월급을 3% 줄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그나마 쉽게 환산할 수 있는 변수지만, 노동의 질은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똑같이 월급을 받고 있지만 수행하는 과업이 너무 어려워졌다거나 상사나 동료와의 불협화음으로 부대끼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었다면 월급은 실제로 깎인 셈이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일에 대한 보람이 커지고 자기계발도 병행할 수 있게 되었다면 보수는 늘어났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가격 인상엔 민감, 크기 축소엔 둔감

화폐 환상과 비슷한 착시 현상은 우리 경제 행위에서 많이 발견된다. 물가도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초콜릿들은 지난 20여 년 동안 가격이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확연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한 해가 다르게 그 크기가 작아진다. 요즘 상품을 보면 동일한 회사와 브랜드의 제품인데 10년 전에 비해 거의 4분의 3 정도로 줄어든 듯하다. 사실상 가격이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정부가 조사하는 물가 동향에는 잡히지 않는다. 물론 소비자는 초콜릿을 살 때 값이 올랐다고 체감하지만, 양이 그대로면서 가격이 오르는 경우보다는 둔감한 것이 사실이다. 제과회사는 소비자의 그런 허점을 잘 알고 이용한다.

초콜릿의 경우에는 그 크기가 눈으로 금방 확인되기 때문에 그나마 소비자가 손해를 본다고 느낄 수 있다. 임금 계산에서 인플레이션이나 근로시간과 마찬가지로 가격 계산에서 상품의 부피도 양적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대비 관계를 쉽게 식별할 수 있다. 그런데 질적인 차원으로 가면 어려움이 생긴다. 서비스업의 예를 들어보자. 어느 식당의 음식값은 그대로인데 반찬이 부실해지거나 종업원이 불친절해지거나 식사 공간이 비좁고 불편해졌다. 워낙 바쁘게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그런 미세한 차이들을 감지하면서 손익을 따져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도 실제로는 음식값이 오른 것과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소비자가 대가를 치르는 데도 그것이 감춰진 상황이 매우 많다. 휴대전화 판매장마다 ‘공짜폰’이라고 써 붙여놓았는데, 거짓말이다. 통신사들이 지난해 마케팅비로 사용한 돈이 무려 8조6천억원이라고 하는데, 그중 상당 부분이 고객 쟁탈을 위한 공짜폰 제공에 들어갔다. 그것도 결국 통신요금에 반영돼 소비자가 지급했다. 물론 모든 소비자가 골고루 부담하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도 불평등이 발생한다. 한 회사에 오랫동안 충실한 고객은 손해를 보는 반면, 주기적으로 통신사를 옮기면서 번호 이동에 따른 혜택만 누리는 ‘얄미운 고객’이 이익을 보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아침 출근길에 대량 살포되는 타블로이드판 신문들을 ‘무가지’라고 부르는데, 이 역시 엄밀히 말하면 무료가 아니다. 소비자가 직접 돈을 내지 않을 뿐, 그 신문의 수입원인 광고료를 결국 소비자가 해당 상품을 살 때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지출을 늘릴수록 GDP는 올라간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환경을 파괴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세금을 퍼부어도 마찬가지다. GDP 또한 경제 규모와 성장의 정확한 측정 수단은 아니란 얘기다. 4대강 사업 영산강 구간 공사 모습.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정부 지출을 늘릴수록 GDP는 올라간다. 생산성이 떨어지고 환경을 파괴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세금을 퍼부어도 마찬가지다. GDP 또한 경제 규모와 성장의 정확한 측정 수단은 아니란 얘기다. 4대강 사업 영산강 구간 공사 모습.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그래도 무가지는 그 대가로 신문을 얻을 수 있고, 어차피 광고는 어느 매체에든 내는 것이니 그렇다 치자. 광고가 나가는 것도 아니고 소비자에게 아무 혜택도 돌아가지 않으면서 간접비용이 잔뜩 들어가는 상품이 있다. 의약품이 그것이다. 한국 제약회사들은 매출의 40%나 되는 돈을 영업비로 지출한다. 연구개발비는 5%에 불과하단다. 처방전에 자기 회사 약을 써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의사들의 해외 연수 등 여러 가지 ‘찬조’를 하느라 들어가는 돈인데, 이 역시 결국 환자들이 부담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따져보면 숨어 있는 비용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GDP도 현실과 숫자의 괴리 현상 보여

기업의 회계장부에도 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한때 미국에서 가장 혁신적인 모델로 각광받으며 ‘7대 기업’의 반열에까지 오른 거대 에너지 기업 엔론이 2001년 느닷없이 몰락하게 된 것은 숫자의 속임수가 밝혀지면서였다. 엔론은 회계장부에 몇몇 비용을 기재하지 않음으로써 손실을 감췄고, 유령회사를 만들어 부실을 떠넘겼다. 기업주에게 ‘분식회계’의 유혹은 늘 도사리는 듯하다. 급기야 2009년에 인도판 엔론 사태가 일어났다. 인도 굴지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새티암의 회장은 지난 수년간 회사 이익과 자산 수준을 크게 부풀려 보고해왔다고 털어놨다. 장부에 적힌 자산 12억달러 가운데 무려 94%가 거짓으로 작성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명백한 사기나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이 아니라도 현실과 숫자 사이의 괴리는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 환경전문 싱크탱크 ‘월드 워치’를 이끄는 레스터 브라운 박사는 “이른바 ‘시장의 실패’는 뉴욕의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문명 자체에서 비롯된다”고 설파한다. 시장가격에 ‘진실’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즉, 각종 석유 제품이나 고기의 시장가격에는 환경 파괴의 간접비용이 반영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인데, 언젠가 치러야 할 비용을 숨겨놓고 정당한 가격보다 싸게 공급되다 보니 자원이 고갈되고 과잉 개발된다. 시장이 잘못된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우리는 석유를 과소비하게 된다. 브라운 박사에 따르면, 이는 “반드시 계산해야 할 비용을 장부에 기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엔론 스캔들과 똑같다.

이런 점에서 최근 등장한 ‘사회적 회계’라는 대안적 시스템을 눈여겨볼 만하다. ‘사회적 회계’를 주장하는 이들은 기존 회계 정보가 기업 경영인과 투자자를 위해서만 생산된다는 점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다. 사회 전체를 위한 회계 정보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윌리엄 캅 등의 선구자가 1950년대부터 문제를 제기해왔는데, 기업이 노동자의 삶과 환경과 공동체 등에 비용을 전가시키면서 이윤을 챙기지만 결국 사회의 손실을 유발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안적 회계에서는 그런 비용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돼 포괄적 비용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산출하는 각종 경제지표에도 허점이 많다. 예를 들어 흔히 국내총생산(GDP)으로 경제의 건실함을 따지는데, 그것이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모두 나타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에 따르면 ‘정부 부문’을 측정하는 방법이 적절하지 않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지출을 많이 하면 그 효율성과 상관없이 GDP는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아무 생산성도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무분별하게 세금을 쏟아붓는 한국 정부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숫자 이면의 진실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을

현대사회에서 숫자는 매우 중요하다. 광범위한 사회와 거대한 체제를 경영하려면 수학적 합리성과 객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그 숫자들이 무엇을 반영하는가를 냉정하게 따지지 않은 채 그 명목에만 집착하다 보면 중대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1997년 김영삼 정부 말기에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환율을 850원으로 무리하게 묶어둔 결과 외환위기를 맞이한 것도 그 한 가지 예가 된다.

억지로 덮어두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돈으로 드러나는 숫자를 절대시하지 않으려면 그 이면에 감춰진 실체를 끊임없이 탐색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경제 운영에서 인문학적 토론과 성찰이 요구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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