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1일 부산의 어느 종합병원 수납창구에서 직원이 고객으로부터 5만원권 위조지폐를 받고 3만원가량을 거슬러줬다. 너무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다 보니 생긴 실수였다. 그런데 나름의 첨단 기술로 감쪽같이 만든 ‘보통 위폐’와 달리, 이건 한눈에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황당한 위폐였다. 전체적인 색상만 똑같을 뿐 초상은 신사임당 대신 부처가 들어가 있고, ‘한국은행’ 대신 ‘극락은행’(뒷면에도 BANK OF GOUKRAG), ‘오만원’ 대신 ‘오만관’이라고 인쇄돼 있었다. ‘50000’이라는 숫자 밑에는 버젓이 사찰 표시와 함께 ‘자장 보살’이라는 글자까지 새겨져 있었다. 이 정도 기술이라면 얼마든지 ‘진짜’(?) 위조지폐를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이렇듯 ‘가짜’(?) 위조지폐를 만든 것은 장난기가 아주 심한 사람 아니면 불교 광신도의 소행이리라. 경찰도 이렇듯 엉뚱한 위폐를 놓고 수사를 펴기가 난감했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끼리 종이 쪼가리를 믿고…
어느 나라에서나 위조지폐는 골칫거리다. 그래서 가짜를 식별해내는 표시나 장치를 지폐 곳곳에 심어놓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돈을 받을 때마다 그것을 일일이 확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서 정교하게 만들면 꽤 여러 번 유통된다. 특히 이번처럼 신권이 발행되면 사람들이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틈을 타서 위조 범죄가 고개를 든다. 이에 국가는 위폐범을 엄격하게 다스린다. ‘통화에 관한 죄’를 다루는 대한민국 형법 207조에는 “행사할 목적으로 통용하는 대한민국의 화폐, 지폐 또는 은행권을 위조 또는 변조한 자는 무기 또는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위폐범을 최대 종신형으로까지 처벌할 만큼 통화의 신빙성은 사회질서의 근간이 된다.
삼엄한 단속과 무거운 처벌 덕분인지 위조지폐가 시장의 거래를 뒤흔들 정도로 기승을 부리지는 않는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돈을 주고받으면서 혹시 위폐가 아닐까 의심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전혀 모르는 사람들끼리 그까짓 종이 쪼가리 하나를 믿고 물건과 서비스를 사고판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과 문화가 정착하는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기원전 500년께 지중해 근방과 중국에서 청동이나 은으로 동전을 만들었고, 고조선에서도 금속화폐가 주조·유통됐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금속화폐가 모든 유통의 매체가 된 것은 아니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쌀, 삼베, 추포, 무명 등이 물품화폐로 널리 통용됐다. 다른 문명권에서도 모포, 마포, 면포, 견포, 깃털, 모피, 반지, 칼, 도끼, 철포, 피리, 북 등의 물품화폐가 널리 사용됐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와 조선 때 조정에서는 금속화폐를 정착시키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다고 한다. 돈을 찍어낼 수 있으면 그에 따라 이익도 생기고 세금도 체계적으로 징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속화폐의 보급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물품화폐에 익숙한 농민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고려대 이헌창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왜 동전과 저화(지폐) 통용정책은 실패로 귀결됐을까? 물품화폐는 화폐 이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반면, 금속화폐와 지폐는 그렇지 못한데다가 국가가 그 구매력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아 민간이 불신했기 때문이었다. 태종 때 저화를 강제로 통용시키려 하자, 민간에서는 그것을 쌀과 삼베 등 물품화폐와 달리 ‘굶주려도 먹을 수 없고 추워도 입을 수 없는 한 조각의 검은 자루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이헌창 ‘돈 한 냥, 쌀 한 말, 베 한 필의 가치’, , 한국역사연구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농민의 불신은 타당하다. 그 자체로 사용가치가 없는 물건에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유사시에 바로 사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위조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헌창 교수에 따르면 ‘돈’에 대한 관념은 이미 조선 전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오로지 은화(銀貨)에 국한된 것이었다. 이는 서울을 중심으로 왕실과 지배층 사이에서 유통되어 서민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쨌든 은화가 돈으로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은 은이 귀금속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말하자면 어느 정도 물품화폐적인 속성이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돈은 그 자체로 물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부자, 물에 빠뜨린 거대한 돌의 소유주그렇다면 지금 물품화폐가 사라지고 일반 화폐가 널리 통용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명을 위해 어느 낯선 세계에 잠시 들러보려 한다. 인류 역사 속에 등장한 다양한 화폐 가운데 독특한 것 하나가 돌로 만든 돈(석화·石貨)이다. 이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여기에서 다시 한번 소개한다. 돌돈을 만든 이들은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에 있는 야프섬 사람들이다. 돌돈은 원 모양 돌의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작은 것은 30cm, 큰 것은 직경 3m가 넘고 무게가 4t까지 나간다. 크고 무거울수록 높은 금액의 돈이다. 그리고 험난한 과정을 거쳐 확보한 것일수록 액면가가 높다. 그렇게 저마다 사연을 가진 크고 작은 돌덩어리들이 돈으로 유통된다는 점이 신기하다. 청렴의 표상으로 종종 거론되는 최영 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見金如石)고 했지만, 야프섬에서는 ‘돌 보기를 황금같이 하라’(見石如金)고 했어야 할 것이다.
이 돈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간편하게 소지할 수도 있고 언제든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것이 화폐의 기본 요건인데, 이 돈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떤 거래가 이뤄져 주인이 바뀌어도 돌돈은 그 장소에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그 소유권의 변경 사항을 주민들이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특별한 문서가 없이도 그러한 소속 관계가 정확하게 인지되는 것은 소규모 공동체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무도 본 적이 없는 돌돈조차 통용된다는 점이다. 그 섬에서 가장 부유한 가족은 어떤 거대한 돌돈의 소유주다. 그런데 그 돌은 이 섬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물속에 빠져버렸다. 그것이 여러 세대 전의 일인데, 그 가족은 그것을 계속 물려받아 소유하고 있다. 누구도 그 가족이 가장 부자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결국 돌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소유권에 대한 공통의 인식만 흔들리지 않으면 화폐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참으로 해괴한 화폐 제도다. 매우 불합리하고 미개한 문화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돈도 별로 다르지 않다. 부자들도 지갑이나 장롱에 그다지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제는 돈을 노리고 침입하는 도둑이 많이 사라졌다. 돈은 대부분 은행 등 금융회사에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의 소유권을 표시하는 통장이다. 그것도 이제는 인터넷뱅킹이 보편화되면서 종이 문서가 아니라 온라인에서 디지털 기호로 반짝일 뿐이다. 우리는 그 돈이 실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정말로 있을까. 만일 내가 은행에 가서 내 계좌에 찍힌 돈이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다고 하자. 직원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그래도 떼를 쓴다면 직원은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귀하께서 언제 우리한테 돈을 갖다 맡긴 적이 있나요?” 사실 맞는 말이다. 지금 사용하는 계좌를 열어 그동안 ‘입금’란에 찍힌 돈들 가운데 당신이 어디에선가 현찰을 받아다가 직접 집어넣은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 헤아려보라. 내 경우 0.01%도 되지 않는 듯하다. 아니, 지난 10여 년 동안에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입금한 기억이 없다. 그렇다면 나는 돈이 아닌 무엇을 받았다는 말인가. 내가 얼마만큼의 돈을 받을 수 있다는 표시가 통장에 찍혔을 뿐이다.
한국을 포함한 현대 경제 시스템에서 시중에 유통되거나 은행에 예금돼 있는 돈 가운데 실제로 중앙은행이 조폐공사를 통해 발행한 돈은 10% 미만이다. 수표도 돈으로 바꿔주겠다는 증서일 뿐 돈은 아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거래가 신용카드나 계좌 이체로 이뤄진다. 게다가 각종 상품권, 쿠폰, 마일리지, SMS티켓 등으로 거래하는 상품이 점점 늘어난다. 그리고 이제는 ‘기프트콘’이라는 것을 문자로 전송해줄 수 있어서, 휴대전화로 선물이나 뇌물 증여가 가능해졌다. 이 모든 것이 순전히 정보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그에 해당하는 현금이 정말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아무 관심이 없다.
이 기묘한 시스템이 작동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는 것은 결국 ‘믿음’이다. 화폐경제가 본질적으로 그러하다. 금화든 돌돈이든 한국은행 지폐든 모두 그것이 진짜임을 믿기에 통용될 수 있다. 그런데 그 경우에는 그나마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화폐가 징표로 존재한다. 하지만 지금 그러한 화폐의 물질성 자체가 사라져가고 있다. 홈쇼핑에서 부동산 거래 그리고 국가의 재정지출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숫자만이 가상공간에서 이동할 뿐이다.
그런 환경에 편승해 위조지폐를 궁리하던 금융범죄자들도 이제 온라인 뱅킹을 해킹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런 사태가 일어날 확률은 지극히 낮겠지만, 누군가의 범행으로 또는 예기치 않은 사고로 금융전산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다고 가정해보자. 온라인 입출금이 보편화되면서 종이 통장이 사라져가는 지금, 모든 금융 데이터의 복구가 불가능할 만큼 훼손돼버린다면?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과 무질서에 봉착할 것이다.
신뢰만 있다면 뭐든 돈이 될 수 있어
돈은 이제 물질이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기호 체계일 뿐이다. 어떤 학자는 그런 관점에서 화폐를 일종의 언어로 보기도 한다. 즉 소통의 도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매개로 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거래가 이뤄진다. 언어가 언어에 의해서만 언어일 수 있듯이, 돈도 돈에 의해서만 돈으로 존립할 수 있다. 언어가 그러하듯이 돈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만 그 가치가 드러나는 사회적 존재다. 따라서 신뢰가 바탕이 된다면 여러 관계나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돈이 창출될 수 있다. 화폐의 미래는 우리의 상상계에 활짝 열려 있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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