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 환율, 팍스넷.’
지난해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한국 40대 남성의 검색 빈도 순위로 1·2·3위를 차지한 단어들이다. 돈을 불리기 위한 정보 사냥은 맹렬하다. 많은 회사원들이 주식이나 펀드에 돈을 넣고 노심초사하면서 인터넷을 뒤진다. 근무 시간에도 관련 사이트를 수시로 드나든다. 그 때문에 업무 집중도가 떨어지는 걸 방지하려 회사 내에서 컴퓨터의 외부 접속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자 이제는 회사 바깥에서 회로를 찾는다. 점심시간에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PC방으로 달려가 주가 동향을 확인하는 회사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돈의 위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당신의 행복에 무엇이 중요한가? 이 질문을 가지고 문화방송과 한국갤럽이 함께 7년의 시차를 두고 조사를 했다. 그 결과 2001년에는 건강 36%, 가족 35%, 돈 14%로 나왔는데, 2008년에는 건강 32%, 돈 32%, 가족 24%로 나왔다. 가족의 비중이 줄어들었고, 그보다 큰 폭으로 돈의 비중이 늘었다. 어느 예비 신부가 결혼 이후의 가계 운영에 참고할까 해서 재테크 강연에 참석했는데, 강사가 조언하기를 집안에 결혼 사진 대신 전국의 부동산 정보가 표기된 지도를 걸어놓으라고 했다 한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한국인에게 이런 조사를 한다면, 짐작건대 ‘돈’이란 대답이 가장 많이 나올 것이다. 돈에 대한 걱정이나 욕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 돈에 시달리다가 목숨마저 포기하는 이들이 줄을 잇고, 다른 한편으로 일확천금의 꿈은 날로 부풀어간다. ‘당신도 32억원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인생역전, 이번에는 당신 차례입니다.’ 로또 광고의 속삭임은 한순간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부동산과 주식에 이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른 펀드는 금융 소비자를 강력하게 빨아들였다. ‘재테크’는 더 이상 특정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많은 갑남을녀의 일상이요 상식이 됐다.
이제 정기적금 같은 것을 하는 사람은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으로 여겨진다. 알뜰하게 생활하며 저축하는 근검절약의 미덕은 시대착오적인 퇴물이다. 이런 가운데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격언은 자취를 감췄다. (보통 사람들이 몇천만원, 몇억원의 큰돈을 굴리면서 대박을 꿈꾸는 사이에, 정작 ‘티끌 모아 태산’은 대기업들이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동네 슈퍼까지 잠식하면서 꼬마들의 군것질 푼돈까지 훑어가고, 이동통신회사들은 10초 단위의 요금제 덕분에 지난해 9천억원의 낙전 수입을 올렸다. 그리고 국내 예금과 보험금 가운데 휴면계좌의 잔고 총액이 약 1조5500억원, 휴면 주식이 2억5천만 주라고 한다.)
물론 한국만의 사정은 아니다. 근대 이후 시장경제가 확장되면서 화폐의 중요성은 점점 커졌고,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서 그 힘이 더욱 막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돈의 생명력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굳건하게 이어질 듯하다. 미래학자들은 말한다. 이러저러한 직업이 소멸하고, 대학도 사라질 것이라고. 중국의 공산당이 머지않아 문을 닫고, 일부일처제가 철폐될 것이라고. 이런 변화들을 예견하는 미래학자들도 화폐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 힘은 오히려 점점 더 커질 전망이다. 지구촌 전체를 휘청거리게도 하면서 일상의 미세한 부분까지 파고들어 운신의 폭과 감정의 희비를 좌우하는 돈, 과연 그 정체는 무엇인가.
필자가 어느 모임에서 ‘내게 돈은 □□이다’라는 질문에 빈칸을 채우도록 해봤다. 여러 가지 답들이 나왔다. “돈은 철학자다”(생각이 깊어지게 만드니까), “돈은 바람 또는 자식이다”(잡힐 만하면 쏙 빠져나가고, 내가 원할 때는 오지 않고 자기가 오고 싶을 때 마음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가버리니까), “돈은 혈압이다”(많아도 고민이고 적어도 고민이니까), “돈은 자기 자신이다”(둘 다 모두 내 뜻대로 안 되니까). 그리고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돈의 인문학’이라는 강의를 하면서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는데, 거기에서도 흥미로운 답들이 나왔다. “돈은 물이다”(자꾸 써야 하고 없으면 안 되는 것), “돈은 하루살이다”(하루하루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 때문), “돈은 영화다”(영화에 여러 장르가 있듯이 쓰임에 따라 공포·멜로·감동으로 바뀔 수 있는 것).
현대인의 돈에 대한 동기의 뿌리를 찾아대형 서점에 가보면 돈에 관한 책들이 별도의 코너에 가득 진열돼 있다. 재테크 지침서들은 끊임없이 쏟아진다. 다른 한편으로 돈에 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책들도 간간이 출간된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에 대한 비판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면서, 돈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현재의 거대한 금융 시스템이 출현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작동 원리를 파헤치는 르포 형식의 저술에서부터, 화폐 중심의 시장경제에 대한 경제사나 인류학적인 조망, 그리고 돈에 대한 인간의 태도나 반응을 분석하는 경제심리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부(富)의 무한 팽창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린 지금, 돈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거기에 얽힌 마음과 사회의 문법을 이해하는 작업은 다방면으로 확충돼야 한다. 인문학의 이름으로 돈을 이야기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문학이 현실과 담을 쌓고 고매한 정신세계를 가다듬는 사치여서는 안 된다는 반성이 최근에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라는 책을 쓴 얼 쇼리스의 활동이 소개되고, 대학 바깥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인문학 운동이 꾸준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이어지는 생존의 한복판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의 실존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우려는 것이다. 거리두기의 여유를 확보하지 않으면 다른 삶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의 인문학’이 지향하는 바도 그러하다. 돈에 대한 열망을 잠시 가라앉히고 그 동기의 뿌리를 더듬어보는 것이다. 거기에 얽힌 크고 작은 힘들의 얼개를 두루 살피면서 경제의 본질을 헤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인문학의 풍부한 유산에 기대어 경제학이 놓쳐버리는 현실의 이면을 여러 각도에서 해명할 수 있다. 너무나 자명하게 받아들여지는 돈, 그 오묘한 정체를 새삼스레 따지는 것은 이 시대의 핵심을 꿰뚫어보는 지름길이다. 또한 그것은 자아를 새롭게 대면하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부대끼는 궁핍이나 속물적인 탐욕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인문학은 삶과 세상을 성찰하도록 지성과 감성을 연마하는 수행(修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언어는 그러한 시야를 열어주는 핵심 매체가 된다. 언어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거나 본뜻이 왜곡될 때 인문학의 자리는 비좁아진다. 정보화 시대에 언어는 너무 쉽게 남발된다. 선정적인 전략을 구사하는 마케팅에서 야릇한 말장난으로 소비자를 현혹하기 일쑤다. 한때 전국 방방곡곡에 독버섯처럼 번졌던 도박장의 상호 ‘바다이야기’가 그 한 가지 예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대해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 바 있다.
“낭만적으로 시 제목 같은 ‘바다이야기’가 도박판이라는 걸 누가 알았겠어요? 그것은 문화관광부에서 문화, 낭만주의 그리고 사행(射倖), 이 세 가지를 붙여서 한 거 아닙니까. 사람 사는 데마다 도박장이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거지요. 도박은 도박처럼 보여야지요. 문화관광부에서 하는 것이면 문화행사처럼 보여야 되고, 시(詩)면 시 같아야지요. ‘바다이야기’처럼 시와 문화와 도박이 합쳐 있는 게 한국의 혼란 상태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요.”(김우창과의 대화, 중에서)
도박판 이름이 ‘바다이야기’인 전도된 세상바다는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으로 탁 트여 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무한한 상상을 자아낸다. 거기에서 우리는 비좁고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 원대한 우주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문학이나 음악이나 미술에서 바다는 ‘마음의 해방구’로 자주 비유된다. 그런데 수많은 사람들을 파탄으로 몰아넣었던 성인오락실의 상호가 ‘바다이야기’라니. 횡재가 기다리는 보물섬 또는 블루오션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물 위에 떠 있는 모든 것들을 사정없이 집어삼키는 파도의 이야기인가. ‘바다이야기’라는 미명은 오락실의 실체를 헷갈리게 했는데, 생각해보면 정상적인 경제활동과 음성적 도박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돈 놓고 돈 먹기 또는 다단계판매와 다름없는 머니게임은 너무 쉽게 과열되고, 어느 임계치를 넘으면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 괴물에게 잡혀먹히지 않으려면 탐욕의 고삐를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해야 한다. 물론 돈에 대한 집착을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다.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당장 끼니 잇기가 어렵고 빚이나 병원비에 쫓기는 이들에게 돈은 전부다. 절대 빈곤층에게는 우선 돈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돈에 대해 성찰해보자고 쉽게 제안할 수 없다.
그런데 왜 그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고통을 받는가? 경제가 성장했는데 빈곤층이 늘어나는 까닭은? 너도나도 돈을 향해 폭주하기 때문이다. 그만하면 넉넉한데도 계속 허기를 느끼면서 한없이 움켜쥐려 하고, 그 경쟁이 집단의 상승작용 속에 더욱 치열한 ‘쩐의 전쟁’으로 증폭된다. ‘돈의 인문학’은 그러한 강박을 여과하고 완충하면서 생의 의미와 부가 가치의 원천을 되짚어보는 작업이다. 양극화의 극복은 국가 정책이나 제도의 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사회운동에도 한계가 있다. 물질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마음의 여백을 찾고 삶 자체에 충실할 때 돈의 흐름은 조금씩 바로잡힌다.
김광림 시인은 ‘0’이라는 작품에서 돈을 넘어선 존재의 바탕을 다음과 같이 더듬고 있다. “예금을 모두 꺼내고 나서/ 사람들은 말한다/ 빈 통장이라고/ 무심코 던져버린다/ 그래도 남아 있는/ 0이라는 수치 (…) 살아 있는 것도 아니요/ 죽어 있는 것도 아닌/ 그것들마저 홀가분하게 벗어버린/ 이 조용한 허탈// 그래도 0을 꺼내려고/ 은행창구를 찾아들지만/ 추심할 곳이 없는 현세/ 끝내 무결할 수 없는/ 이 통장// 분명 모두 꺼냈는데도/ 아직 남아 있는 수치가 있다/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세계가 있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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