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배신자(?)들을 종종 만난다. 배신자라 함은 그때껏 몸담아온 조직이나 자신에게 일할 터전을 제공했던 개인들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려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들의 배신은 미수에 그치기도 하지만, 진도 8 이상의 강진이 되어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도 왕왕 발생한다. 그들의 공식적 호칭은 ‘내부고발자’다.
내부고발자에 가해지는 인격 모독
얼마 전 나는 팔자에 없는 법원 구경을 해야 했다.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이 들어온 것이다. 한 시설을 취재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방송될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시설 쪽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미주알고주알 장황하게 늘어놓은 시설 쪽의 탄원서를 읽으면서 나는 싱긋 웃었다. 우리에게는 신빙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내부고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설 쪽에서 보낸 탄원서에는 엉뚱한 사람을 내부고발자로 지목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근무 태도의 불성실함 때문에 원장의 지적을 여러 번 받았고 끝내 체직되었으며 그 때문에 앙심을 품은 자.”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지목한 사람은 우리에게 정보를 준 내부고발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더 유감스러운 것은 그들이 내부고발자라고 찍은 사람에게 가하는 인격적 모독이었다. 내부고발자와 함께 취재를 진행할 때마다 우리는 유사한 일을 겪었다. 내부고발자는 대개 게을러터지고, 책임감이 전혀 없으며, 심지어 금전적 추문도 있고, 더 심하게는 행실이 문란하고, 남자(여자)관계가 복잡한 자로서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존재들로 묘사됐다.
그 가운데 내부고발자가 가장 마음 아파했던 욕설은 ‘배신자’라는 것이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사람들의 터전에 자신이 폭풍을 몰고 왔다는 자책감에 더해 “너는 그런 짓 안 했느냐?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이 배신자야”라며 대드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인간성이 피폐해질 만큼의 고통을 불러오는 듯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지금 옳은 일을 하는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고, 놀이방 원장의 횡포를 제보했던 한 아주머니는 “더 이상 이 업계에서 일을 못할 것 같다”면서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로부터 거의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들은 말이 있다. 간단하지만, 무한한 고뇌와 정직한 결단이 서린 한마디.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요.”
언젠가 만났던 한 요양시설 내부고발자의 말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저도 원장이 따로 주는 돈 받았어요. 월급 말고요. 원장이 능력껏 나랏돈 빼먹고 우리 입 막으려고 나눠주는 돈이죠. 그런데 며칠 전에 어르신 몇 분이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려서 병원에 가셨어요. 얼굴이 새파래지셔서 아래로 쏟고 위로 토하시면서 ‘나 죽는 거냐?’고 제 팔을 붙드시는데 그만 엉엉 울었어요. 이건 아니잖아요. 저 처벌돼도 괜찮아요. 원장한테 쌍욕을 들어도 좋아요. 근데 정말로 이건 아니잖아요.”
자신이 몸담아온 곳의 치부를 드러내고, 자신을 믿었던 사람의 죄상을 들추는 것이 ‘배신’이라 불릴 수도 있다. 아니 실제로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기를 즐긴다. 그러나 과연 누가 배신자인가. 누가 먼저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자신의 통제하에 있는 이들을 공범으로 만들었으며, 사회로부터 받은 신뢰와 권한을 누가 먼저 오용하고 남용했는가. 누가 누구를 배신한 것인가.
누가 누구를 배신한 것인가“이건 아니잖아요”를 몇 번씩이나 되뇌던 내부고발자의 목소리는 지금도 실연의 상처처럼 내 가슴에 얹혀 있다.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 사람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었다. 그들이 피해를 감수하면서 담담히 토로한 사실 덕분에 우리는 진실에 접근하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여러 내부고발자의 결연한 얼굴에게, 그리고 몇몇 이름에게. 이문옥 전 감사관, 이지문 전 육군 중위, 김이태 박사, 김용철 변호사 등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용기를 내주셨던 분들에게.
김형민 SBS PD
*이번호로 ‘김형민의 노 땡큐!’ 연재가 끝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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