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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21] 나보다 젊은 아버지

등록 2010-03-04 11:26 수정 2020-05-03 04:26
나보다 젊은 아버지

나보다 젊은 아버지

무슨 산악영화였는지 아니면 그냥 어쩌다 들은 동화 같은 이야기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어떤 산악인이 설산에서 조난을 당한다. 그에겐 어린 아들이 있었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주검은 찾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간다. 중년이 된 아들은 아버지처럼 산악인이 되어 그 산을 오르는데 눈 속에서 헤매다 주검 한 구를 발견한다. 그것은 현재의 아들보다 젊은 청년 아버지의 주검이었다. 뭐 그런 내용의 이야기다. 지금의 나보다 젊은 아버지의 모습…. 이 한 문장이 가진 알 수 없는 슬픔, 아련함 같은 감정이 꽤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던 것 같다.

나는 사진을 찍는다. 20세기 후반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해 디지털카메라가 대세인 21세기에도 사진을 찍고 있으니 사진 역사상 최고의 격동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디카의 편리함 때문인지 찍기는 참 많이 찍는다. 그중 몇 장이나 인화가 되어 어떤 책 속에, 혹은 앨범이나 액자 속에 남아 있게 될까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얼마 전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아버지의 옛날 사진을 보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얼굴이다.

부모님의 옛날 사진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지…. 사진 속의 그들은 1960년대 혹은 70년대의 어느 곳을 배경으로 한 채 한결같이 웃고 서 있다. 때론 지금의 나보다 젊기도 하다. 굳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눈 덮인 산으로 가지 않아도 사진 한 장이면 젊은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인화되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을 때가 가장 ‘사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남겨두면 책을 펼치다가, 혹은 앨범을 들추다가 언젠가 우연히 보게 될 확률도 높아지지 않을까. 아들이 지금의 젊은 나를 보면서 애틋하게 추억할 시간을 같게 하기 위해서라도 사진 몇 장 남겨두는 수고로움은 감수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글·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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