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산악영화였는지 아니면 그냥 어쩌다 들은 동화 같은 이야기였는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어떤 산악인이 설산에서 조난을 당한다. 그에겐 어린 아들이 있었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주검은 찾지 못한 채 세월이 흘러간다. 중년이 된 아들은 아버지처럼 산악인이 되어 그 산을 오르는데 눈 속에서 헤매다 주검 한 구를 발견한다. 그것은 현재의 아들보다 젊은 청년 아버지의 주검이었다. 뭐 그런 내용의 이야기다. 지금의 나보다 젊은 아버지의 모습…. 이 한 문장이 가진 알 수 없는 슬픔, 아련함 같은 감정이 꽤 오랫동안 가슴에 남았던 것 같다.
나는 사진을 찍는다. 20세기 후반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해 디지털카메라가 대세인 21세기에도 사진을 찍고 있으니 사진 역사상 최고의 격동기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디카의 편리함 때문인지 찍기는 참 많이 찍는다. 그중 몇 장이나 인화가 되어 어떤 책 속에, 혹은 앨범이나 액자 속에 남아 있게 될까라는 의문이 들곤 한다.
얼마 전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아버지의 옛날 사진을 보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얼굴이다.
부모님의 옛날 사진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지…. 사진 속의 그들은 1960년대 혹은 70년대의 어느 곳을 배경으로 한 채 한결같이 웃고 서 있다. 때론 지금의 나보다 젊기도 하다. 굳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눈 덮인 산으로 가지 않아도 사진 한 장이면 젊은 그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인화되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을 때가 가장 ‘사진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남겨두면 책을 펼치다가, 혹은 앨범을 들추다가 언젠가 우연히 보게 될 확률도 높아지지 않을까. 아들이 지금의 젊은 나를 보면서 애틋하게 추억할 시간을 같게 하기 위해서라도 사진 몇 장 남겨두는 수고로움은 감수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글·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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