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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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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단식

등록 2010-02-09 16:27 수정 2020-05-03 04:25
어떤 단식.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어떤 단식.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PD수첩〉에 대한 무죄판결은 찬반을 망라해 온 나라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지난 며칠 동안 뉴스의 중심은 단연 〈PD수첩〉이었다. 잘된 판결이라는 여론이 60%에 육박했지만, 입만 열면 법치를 부르짖던 분들은 신영철 대법관을 의연히 지켜내던 왕년의 소신을 뒤집고 정치적 성향의 판사는 시민운동이나 하라는 둥 막말을 퍼부어댔다. 어찌되었든, 보수적인 법학자들조차 “맨땅에 헤딩”에 비유했던 기소를 끝내 이뤄냈건만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판결에 망연해버린 검찰이나, 그에 맞서던 제작진이나, 고심 끝에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나 힘겹기는 했어도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 일생에 이런 초미의 관심의 대상이 될 일이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주검으로 돌아온 고공투쟁, 동료의 단식투쟁

세상 이치가 공평하지는 않아서 재물이든 연애든 되는 사람은 척척 손에 붙고 불처럼 일어나지만 안 되는 집안은 하는 일마다 자빠지고 쪽박만 깨뜨리게 되는데, 이걸 유식한 말로는 ‘빈익빈 부익부’라고 부른다. 〈PD수첩〉 무죄판결의 후폭풍을 지켜보면서 나는 ‘관심’의 영역에도 이 현상이 적용된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뜨겁다 못해 화상을 입을 듯한 뜨거운 관심의 세례를 받는 〈PD수첩〉에 반해, 목이 찢어져라 외치고 몸을 던져서 호소해도 시릴 정도로 차가운 무관심을 벗어나지 못한 경우도 숱했기 때문이다.

벌써 7년이 지났다. 2003년 한 노동조합의 위원장이 무려 129일 동안 수십m 상공의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던 끝에 목을 매어 세상을 떠난 지도. ‘매미’라는 이름의 전설적인 태풍이 부산 앞바다를 휩쓸고 지나간 해였다. 15층 높이의 선상 호텔이 맥없이 쓰러지던 그 무지막지한 태풍에 휘청휘청 돌아가는 크레인 위에서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김주익 위원장은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에게는 태풍보다도 무서운 것이 있었다. 그를 비롯한 노조 간부들에게는 7억4천만원의 가압류가 발효 중이었고, 5천만원짜리 낡은 연립주택에까지도 법원은 가압류를 인정했던 것이다. 당시 해당 기업의 21년 근속 노동자의 기본급은 105만원이었다.

〈PD수첩〉 제작진은 무죄판결을 받아 웃을 수 있었으나 김주익 위원장은 주검이 되어서야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관심은 문화방송의 노조원이 받은 그것의 1천분지 일, 1만분지 일도 되지 못했다.

괜히 옛날 일을 끌어와서 까탈을 잡고자 함이 아니다. 〈PD수첩〉이 무죄를 선고받기 일주일 전, 이미 고인이 된 김주익 위원장의 동료였으며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인 김진숙씨가 단식을 시작했다. 지난 7년 동안 조선업의 호황 속에 이익을 챙길 대로 챙겼으면서도 이제 형편이 안 좋으니 자를 사람은 잘라야겠다는 회사에 맞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식’뿐이었다. 이것밖에 할 일이 없다며 스스로 죄송하다고 했다. 혹시 들어본 적은 있으신가?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한 여성 노동자는 18일째 밥풀 한 알 씹지 못하고 울분을 대신 씹고 있다.

관심의 ‘빈익빈 부익부’ 사슬을 벗어날 길은

그녀는 굶고 있는데 당신은 무얼 하고 있는가 하고 꾸짖을 의사는 털끝만큼도 없다. 당신은 왜 무관심한가 힐난할 자격은 더더군다나 없다. 하지만 이 팍팍한 세상에서 월급을 하느님처럼 믿고 살아가고 구조조정 말만 나오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 모든 사람은 그녀의 단식에 결코 무심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지 않을까.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고 민주 대연합도 요긴하긴 한데, 언론의 자유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민주 대연합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한다면 우리의 관심을 적절히 나눌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적어도 관심의 영역에서는 ‘빈익빈 부익부’의 사슬을 벗어나는 것이 우리 스스로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김형민 S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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