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용산이 타결되고 한 난치병 소년이 불에 타 숨졌다. 영하 10℃를 넘나드는 추위가 맹렬했다. 용산은 불완전한 타결이었고 소년의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떠나지 못했다. 막 인쇄돼 나온 2010년 1월1일치 조간신문을 들고 퇴근하던 2009년의 마지막 밤, 두툼한 외투 속에서 나는 몹시 떨었다. 신문 사회면의 1단 기사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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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죽음은 누구의 책임일까? 불을 지른 어머니의 책임일까? 난치병을 갖고 태어난 아들의 책임일까? 이들의 딱한 사정을 미리 찾아내지 못한 방송사 ‘난치병 어린이 돕기 프로그램’의 제작진 책임일까? 사회복지단체의 책임일까? 비싼 치료비를 받은 병원의 책임일까? 사회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치밀한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못한 국가의 책임일까?
‘강구연월’(康衢煙月)이라. 이 2010년의 사자성어로 ‘번화한 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뜻하는 ‘강구연월’을 선정했다고 신문은 전하고 있었다. 중국 요임금 시대에 백성들이 태평성대를 노래한 ‘강구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시커먼 연기 속에 여섯 목숨이 타들어가며 시작한 한 해가 다세대주택에서 피어오른 연기 속에 한 소년의 목숨이 사그라지며 마무리되던 그날 밤, 나는 용산이 새해 화두처럼 던졌던 질문, 그리고 한 해 내내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질문, 타결 문구에서도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던 그 질문을 다시 되뇌며 종종걸음을 쳤다. 보름이라지만 서울의 달빛은 은은하지 않았다. 어쩌면, 사람 목숨보다 돈이 최고의 구성 원리인 영하 10℃의 시대, 그 번화한 거리가 너무 추워, 고개는 절로 처박히고 달을 쳐다볼 엄두도 못 냈는지 모른다.
신문은 또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사를 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하는 길목에서 우리 서로 배려하고, 우리 서로 나누고, 우리 서로 베풀어서,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갑시다.” 따뜻한 세상은 어떻게 오는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처럼 오는가? 그렇게 선진 일류국가로 도약하는가? 누구와 무얼 나누고, 누구에게 무얼 베풀자는 것인가? 해묵은 질문이 새해 첫날 아침 일찍부터 고개를 든다. 마감을 하러 출근한 사무실에도 한기가 가득하다.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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