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도, 30대 후반 이상이라면 상당수 공유하고 있을 아버지의 표상. 엄한 아버지. 힘들던 시대,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말할 시간보다는 일해야 할 시간이 많아 늘 무뚝뚝하던 아버지. 그저 근육 같은 눈빛으로 말하고, 취기에 젖은 몸짓으로 말하고, ‘끙’ 외마디 신음으로 바깥세상에서 몰고 온 한숨을 대신하던 아버지. 철없는 자식들에게 때로 회초리나 몽둥이를 들어 편지지 두세 장 분량의 훈계를 딱딱 아프게 새겨주던 아버지. 그러고 난 날 밤이면, 잠든 척하는 자식에게 다가와 매질한 몸 여기저기 마음 아프게 어루만지던 아버지.
30대 후반 이상이라면 상당수 공유하고 있을 또 다른 아버지의 표상. 고루해 보이는 생활 지침과 일탈에 대한 가혹한 응징, 어머니의 복종과 헌신을 너무도 당연시하던 권위. 지금 돌이켜보면 밀려가는 시대의 끝자락을 쥐고 완강히 버티던 옹고집 가부장의 모습. 가족에게 바친 젊음의 회한을 보상받으려는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를 독단과 전횡. 사춘기 반항의 첫 대상이었던 아버지. 어른이 되면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테야, 라고 속으로 골백번 다짐하게 만들던 두려움의 밤들.
아버지는 그런 두 겹의 모습으로 우리의 유년기와 사춘기, 그리고 청년기를 지배했다.
2.
이명박 대통령을 보며 국민의 아버지 노릇을 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후자의 표상을 본으로 삼은 아버지 말이다. 선출된 권력의 행태라고 하기엔 너무나 비상식적인 불통과 독선과 전횡의 이유를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어서다. 어린 자식들은 아버지 하는 일에 상관할 바 없으며, 조용히 하라면 조용히 해야 하며, 말 듣지 않으면 매를 맞아야 하며, 집안에선 복종과 헌신의 철칙만을 따라야 한다는 가부장적 신념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너무 많이 했다.
그러나 국민은 대통령의 자식이 아님은 자명하다. 어린아이인 국민조차도 그렇다. 이젠 자상한 아버지로 변모한 듯 서민의 삶을 챙기겠다고 나서지만,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것 역시 가부장의 시혜가 아니라, 국민을 대리하는 선출 권력의 당연한 의무다. 그러니 다시 진짜 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가야겠다.
3.
이 시대에도 가족의 생계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말할 시간보다는 일해야 할 시간이 더 많은 아버지들이 많다. 쌍용자동차에서 집단 해고에 직면하고 있는 아버지들, 용산 참사에서 불길에 타버린 아버지들, ‘최저’임금조차 더 깎여야 하는 아버지들, 대형마트에 치여 울상 짓는 시장통 아버지들, 하루하루 살아남았음에 안도해야 하는 비정규직 아버지들…. 애틋한 사랑을 그저 가슴속에 묻어둔 채 무뚝뚝한, 그러나 가족을 위해 목숨 정도는 가벼이 내놓고 말 그런 아버지들에게 우리 사회는 언제 위로의 손을 내밀 줄 알까.
이제 노년이 된 아버지의 헐거운 육체를 문득 바라보며, 나는 아버지처럼 되지 않을 테야, 또 다짐해보지만, 어쩔 수 없이 나의 미래인 아버지이기에, 잠깐 눈시울을 적시게 된다.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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