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미네르바는 아테네에 살고 있지 않다

등록 2009-04-30 10:33 수정 2020-05-03 04:25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근본적 차이점은, 아테네인들은 스파르타의 체제를 찬양할 자유가 있으나 스파르타에서는 스파르타 이외의 체제를 찬양할 자유가 없다는 점이다.”
고대 그리스의 변론가이자 정치가인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322년)가 남긴 말이다. 이것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2300년 전의 언설이라니, 새삼 놀랍다. 다음과 같은 변주가 이 땅에선 21세기 오늘날에도 불가능하니 말이다.
“남한과 북한의 근본적 차이점은, 남한 사람들은 북한 체제를 찬양할 자유가 있으나 북한에서는 북한 이외의 체제를 찬양할 자유가 없다는 점이다.”
가수 신해철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합당한 주권에 의거하여, 또한 적법한 국제 절차에 따라 로켓(굳이 icbm이라고 하진 않겠다)의 발사에 성공하였음을 민족의 일원으로서 경축한다”고 밝힌 뒤 보수단체들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든 생각이다.
한발 더 나아가보면, 고대 그리스에는 ‘이세고리아’(Isegoria)라는 표현의 자유 개념이 있었다고 한다. 모든 시민은 자신의 견해를 표명하는 데 평등하다는 개념이다. 이 또한 이 땅에선 21세기 오늘날에도 적용이 힘들 듯하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는 그의 말로 인해 구속됐다. 허위 사실 유포라는 혐의였다. 같은 말을 대학 교수나 칼럼니스트가 했다면 어땠을까. 검찰은 언론의 숱한 오보와 명예훼손에 대해서도 같은 칼날을 들이댈 건가. 다른 건 몰라도, 미네르바 구속을 전후해 그를 못된 범죄인으로 공공연히 묘사했던 언론사들이 그의 무죄판결 이후 단 한마디 사과라도 했던가. 그 허위 사실 유포에는 어떤 책임도 지워지지 않는 건가. (혹자는 무죄가 아직 확정된 게 아니잖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무죄 확정 때까지는 1~2년이 더 걸릴 수도 있고, 그때는 언론들이 이미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난도질하느라 미네르바를 돌아볼 정신이 없을 터다.)
물론 고대 그리스에서도 시민권이 있는 자와 노예는 이세고리아의 적용이 달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네르바로 상징되는 장삼이사 서민들은 21세기의 노예 계급이고, 언론인이나 지식 기득권층만 시민권자라는 말이 된다.
사실 여기엔 하나의 역설이 도사리고 있는데, 오보에 대한 책임에서 결과적으로 전자가 더 무겁게 취급받는다는 건 그가 우리 사회에서 후자보다 더 의미 있는 메시지 전달자라는 인증이 되는 셈이다. 또 ‘공인’으로서의 지위가 높을수록 익명에 숨을 수 없다는 원칙에 비춰보자면, 미네르바는 유죄 확정 전에 신상과 사생활이 모두 까발려져도 괜찮을 만큼 ‘공인’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고, 경찰의 공식 무죄 선언 이후에도 이니셜 A로만 지칭되는 ○아무개 임원은 미네르바만큼의 ‘공인’ 지위도 없다는 얘기가 된다. 고대 그리스에 비유하자면, 시민권자는 미네르바요, 언론인과 지식 기득권층은 노예라는 역설.
그러나 결정적인 사실 한 가지. 불행하게도 미네르바는 아테네에 살고 있지 않다. 그는 스파르타의 방랑자다. 국가의 명령에 따라 열심히 군사훈련이나 받고 생업에나 집중해야 하는 빡빡한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방랑자. 괜한 말을 뱉었다간 바로 철창행이다. 이곳에 이세고리아는 아예 없다.
지친 방랑자는 새벽 벌판에서 개 짖는 소리를 듣는다. 개 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에 따라 사뭇 다른 뉘앙스를 전달한다. 새벽녘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들려오는 개 소리는 낭만에 가깝다. 도둑질을 하는 도중이거나 잔뜩 짜증난 상태에서 개가 짖어댄다면 한 대 걷어차주고 싶어질 것이다. 척박한 스파르타 땅에도 이세고리아를 뿌리내리게 하고픈 소망을 지닌 방랑자라면, 어떤 개가 짖든지 일단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줘야 할 것이다. 그게 이세고리아의 정신이니까. 스파르타의 새벽 벌판은 핍박받는 자의 관용으로 아름다움을 얻는다.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