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이야기는 이제 하나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처럼 돼버린 듯하다. 진지하게 사회나 인권을 고민한다는 사람들이 말끝마다 상용구로 사용하기 시작한 지 오래고, 민주노총이나 대공장 노조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도 즐겨찾기다. “지금 비정규직들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데 정규직 노조가 파업 타령”이냐는 기사는 차고 넘쳐,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평소 노동문제에 별 관심이 없던 정치인이나 지식인도 ‘비정규직의 눈물’을 심심찮게 언급하고, 이를 우리 사회 가장 심각한 문제로 손꼽는 데 주저함이 없으시다.
마음대로 자르는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저잣거리가 이럴진대, 대통령이나 노동부 장관이 이 아이템을 구비하지 않을 리 만무할 터. 경제성장과 실업 통계에 목숨 거는 사람들인데다 경기가 이렇다 보니, ‘몹쓸’ 노무현 정부 때 만든 비정규직법 때문에 자기 임기 내 ‘대량 실직’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다.
일단 비정규직 고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놓으면 적어도 ‘법 때문에’ 실직하는 사람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지난해부터 이렇게 법을 고치는 것이 노동부 장관의 숙원 사업처럼 됐다. 대통령은 정초 버럭질 한 번으로 이 법안을 2월 내 통과시켜야 할 우선과제로 만들었고, 경영자 단체는 “우리도 4년 연장을 원하는 게 아니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라며 눙치면서 화답해준다.
올 7월이면 법 때문에 해고된다는 실제 비정규직 노동자들 인터뷰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간’이 아니라 ‘비정규직 고용 제한 기간’을 늘리는 것에 찬성하느냐고 물은 설문조사 결과를 들이대며 “이 사람들 눈물을 모른 척할 거야?”라고 으름장이다. 나같이 팔랑귀에 소심쟁이들은 움찔하고, 답도 없는 일자리 문제인데 무턱대고 반대했다가 그 책임을 어떻게 지나(물론 누가 나한테 그 책임을 물을 것 같지는 않지만) 걱정도 된다.
그런데, 그런데… 질문 좀 해도 괜찮을까. 그 4년이 지나면 또 뭐라고 그러는 건가요? 2011년이 되면 다시 6년으로, 2013년에는 8년… 이렇게? 아니 뭐, 임금노동자 전체 근속연수 중간값이 1.83년에 불과하다고 하니, 4년 동안 고용되거나 6년 동안 고용되는 것은 매우 안정적인 편이긴 하겠다.
그런데 더 궁금한 질문은 이거다. 법을 이렇게 바꾸면 모든 비정규직을 ‘4년’ 동안 고용해주는 건가요? 지난 2년이 그랬듯이, 4년은 고용을 보장해주는 기간이 아니라 마음대로 잘라도 되는 게 보장되는 기간이고, 그 안에서 얼마든지 1개월·3개월·1년짜리 계약 몇 번으로 언제든지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건… 왜 말하지 않는 거지? 만약 4년 동안 고용이 보장되는 거라고 약속만 해준다면, 나는 이 법 개정에 찬성일세!
뻔한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이려 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그렇게 믿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이제는 아예 “정규직으로 차별받지 않고 사는 것” 따위는 꿈꾸지도 말고 “비정규직이라도 1년만 더, 1년만 더…”라는 기대에 만족하라는 걸까. ‘기간 제한’을 악용해 회전문식으로 사람만 바꾸거나 똑같은 일을 ‘외주화’해 법을 회피하는 것에는 아무 대책도 없이 기간만 늘리자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그리 반대한 법을 부둥켜안게 되다니2006년 겨울, 나는 비정규직‘보호’법이 만들어지는 것을 반대했다(물론 내 까짓게 반대한다고 법이 안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비정규직 고용 자체를 억제해야 한다든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비정규직을 쓰지 말도록 사유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은 사치였고, 그저 “상시적인 일이고 반복 갱신해서 정규직처럼 써왔다면 그대로 정규직”이라는 판례라도 유지되게 “근로기준법을 그대로 놓아둬주세요!” 해야 했다. 그런데 겨우 2년 만에 그렇게 반대했던 비정규직법을 부둥켜안고 “그냥 놓아둬주세요!”라고 소리 높여야 하는 현실. 이거 웃어야 하나.
김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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