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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브리핑] 좀 ‘졸르’면 어때

등록 2009-02-03 10:44 수정 2020-05-03 04:25
좀 ‘졸르’면 어때
이효리

이효리

‘졸라’ 웃기는 일이다. 연예인의 말 한마디를 놓고 심각한 ‘국론분열’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효리가 방송에서 “(송)창의가 요리 잘하는 여자 ○○ 좋아한다고 그랬어”라고 한 데서 비롯됐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서는 그녀가 했던 말이 ‘졸라’ 혹은 ‘열라’였다고 주장했다. 반대쪽에서는 ‘졸라’가 아니라 ‘좀더’였다며 맞섰다. 설마 최고의 인기 연예인 이효리가 ‘졸라’ 했을까 싶지만, 했으면 또 어떤가.(‘졸라’는 ‘정말’ ‘진짜’ ‘몹시’라는 뜻의 비속어) 그런데 이효리 ‘좀더 졸라’ 논쟁은 인터넷을 넘어 신문과 방송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국내 최고의 소리공학 전문가가 동원돼 실제 대사를 감정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해당 신문과 방송이 국민에게 웃어달라며 ‘졸라’대고 있는 것이다. 허리띠 ‘졸라’매고 생업에 매진하는 국민을 위해 개그를 준비한 건 가상한 일이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졸라’ 웃기면 국민들은 열날 뿐이다. 열난 국민이 신문과 방송을 목 ‘졸라’버리겠다며 찾아가기 전에, 보면 볼수록 ‘졸라 열라’는 기사는 제발 이제 그만~.

김대중과 텔레토비의 공통점

김대중 고문과 꼬꼬마 텔레토비의 공통점이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동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과, ‘유아 언어’를 끊임없이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둘 다 언행이 귀엽다는 공통점도 있다. 텔레토비가 주로 내뱉는 대사는 ‘아이 좋아’, 김대중 꼬꼬마가 반복하는 대사는 ‘좌파’다. 차이가 있다면 텔레토비는 꼬꼬마 동산에서 서식하는 반면, 김대중 꼬꼬마는 동산을 배회한다는 것 정도다. 물론 누구에게나 꼬꼬마 시절이 있다. 나 역시 꼬꼬마 시절 이따금 학교에 ‘반공 포스터’를 제출했다. 당시 그렸던 반공 포스터는 늘 비슷했다. 괴뢰군 복장에 늑대 얼굴을 한 인민군의 안면부를 주먹으로 가격하는 그림 위에 ‘때려잡자 공산당’이라는 표어가 있는 그런 포스터였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나올 뿐이다. 그런데, 김대중 꼬꼬마는 요즘도 지면에 ‘좌파와의 전쟁’ 운운하는 ‘꼬꼬마식 글짓기’를 하고 있다. 아예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민통합적 지도자로 거듭날 수 없다면 공연히 좌파 끌어안을 생각하지 말고 좌파와의 일전에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는 꼬꼬마가 김대중 고문이다. 그의 주장을 꼬꼬마식 유아 언어로 요약하면 ‘아이 싫어, 좌파’ ‘빨갱이, 때려잡아’ 정도 된다. 정상인이라면 용산 참사를 바라보며 ‘때려잡자 빨갱이’ 운운하는 김대중 고문의 글을 ‘고문’으로 받아들이겠지만, 한번 ‘꼬꼬마 친구’가 되면 이성적 판단에서 멀어지게 된다. 단순한 대사를 끊임없이 반복해, 결국 따라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꼬꼬마의 ‘친구 만들기 비법’이다.

먼 용산 바라보기

김대중 꼬꼬마가 ‘국민통합 필요 없고, 좌파나 때려잡으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때, 경제5단체가 1월28일 호소문을 발표했다. 핵심 키워드는 ‘국론분열’과 ‘국민적 단합’이었다. 국민들은 용산 사태에 대한 관심을 끊고, ‘금 모으기’ 할 때처럼 똘똘 뭉치라는 이야기였다. 김대중 꼬꼬마와 경제5단체는 얼핏 똑같은 사안에 대해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사람은 ‘국민통합’ 포기하라고 했고, 다른 한쪽은 ‘국민단합’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양쪽은 모두 용산을 ‘먼산’ 보듯 해야 한다며 ‘담합’하고 있다. 바로 ‘꼬꼬마 동산’에서.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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