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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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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생활] 속도위반

등록 2008-07-10 00:00 수정 2020-05-03 04:25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차를 잃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쪼다가 잃은 것도, 술 먹고 어디 둔지 몰라 잃은 것도 아니다.

속도위반을 했다. 행주대교를 건너다가 시속 23km 과속을 했다. 위반일은 2월17일, 행주대교 북단에서 고양시 능곡 방향이다. 그것이 그런 줄 안 것은 속도위반 고지서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그전 위반 때와 마찬가지로 무시했다. 이런 위반들이 쌓여서 나중에 폐차할 때나 차를 인도할 때 한꺼번에 부과된다고 한다. 기백이 넘을 때는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자’가 없으니 그때그때 내지 않는 게 낫다는 게 서민들의 대세다. 서민들의 작은 ‘불복종’이다. 안 내겠다는 것도 아니니, 소심한 ‘모래에 머리 박기’다. 고지서의 주기는 한 달인 것 같다. 한 달 주기로 날아왔지만, 그래, 그때 내가 왜 위반했었지 하다가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6월21일 날아온 고지서는 좀 달랐다. 차를 압류당했다.

압류 연월일은 2008년 6월4일, 압류에 관계된 체납액의 내용에는 ‘과태료 납부 기한은 2008년 5월14일, 납부액은 4만원’과 납부고지서 일련번호가 적혀 있다. 그 밑에는 본론이 있다.

“위와 같이 체납액을 징수하기 위하여 2008년 6월4일 상기 자동차를 압류하였으므로 국세징수법 제46조의 규정에 의하여 통지합니다.

※압류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경찰서에서 과태료납부고지서를 발부받아 납부하시거나, 압류관서의 계좌로 입금할 수 있는 온라인 납부대행제를 이용하셔도 되겠습니다.”

무서웠다. 경기 ○○경찰서는 무서웠다. 6월4일 압류된 차는 6월21일 통보되어 내가 알기 전 이미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만 17일 동안 나는 내 차도 아닌 것을 내 차인 양 타고 다녔다.

그런데 이 종이는 무엇일까. 곧 또 다른 고지서가 날아왔다. 6월은 6개월마다 납부하는 자동차세(지방세)의 시절. 경기 ○○시가 부과한 자동차세 고지서였다. 나는 주인이 아니라고 하더니, 이건 뭐란 말인가. 주인장에게 보내주란 말이야.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로 납부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클릭과 클릭.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단 말이야. 4만원으로 자동차를 하나 사고 자동차세로 모순을 해결했다.

이 모든 것도, 전화를 걸었다고 영장이 날아오고, 단체로 고소당하고, ‘잘못된 보도 내용’이 아니라 ‘그 의도’에 따라 수사받는 것보다야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국가가 막강해서야 국민이 이기겠나. 이렇게 찌질하게 막강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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