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유령 하나가 반도 남쪽을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재주는 영혼 없는(혹은 없도록 강요받는) 무리들을 홀리는 것. 유령은 모든 걸 바꾸라며 피리를 분다. 그리고 반도 남쪽은 가락에 맞춰 춤을 춘다. 행정안전부는 이전 정부의 훈령과 지침 등을 한꺼번에 폐지하기로 했고, 교육과학부는 ‘좌편향된’ 사회·역사 교과서를 바꾸기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 13세기 독일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약속을 위반한 위정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피리 소리로 마을 아이들을 꼬드겨 데려갔다. 반면 21세기 반도 남쪽 유령의 피리 가락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복수가 목적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찾기 위함인가. 유령은 세계 최장 노동시간으로도 모자라 ‘일찍 일어나는 새’ 바람까지 일으킨다. 순진하게 ‘피리 사내’를 뒤따랐던 아이들은 지금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유령이 데려갔나. 두 명의 이주노동자가 반도 남쪽에서 사라졌다. 5월15일 저녁 8시50분 인천공항. 서울·경기·인천 지역 이주노조의 토르너 림부(네팔) 위원장과 압두스 사부르(방글라데시) 부위원장은 방콕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졌다. 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들에게 붙잡혀 청주보호소에 감금된 지 13일 만이다. 지난해 11월 단속된 당시 지도부 3명이 인권위에 진정을 내고도 강제 출국당한 아픈 경험이 있는 이주노조는 이번엔 더 다급하게 인권위에 긴급구제 신청을 한 터였다. 이날 오전 국가인권위원회는 표적 단속으로 이들의 인권이 침해됐는지를 가리기 위해 강제 출국을 유예하라는 긴급구제 결정을 내렸으나 소용없었다. 이쯤에서, 영혼 없는 유령이라도 품음직한 의문이 든다. (1) 이주노조 합법화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21만여 미신고 이주노동자 가운데 하필 지도부 두명만 단속·감금되고 강제 출국당한 까닭은? 참고로,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서울지방노동청이 이주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건 부당하다며 신고필증을 내주라고 판결했다. (2) 정부 합동단속 이틀 만에 10여 명의 단속반원이 집 앞에 잠복하다 이들을 붙잡은 건 표적 단속일까, 아닐까?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사건을 이렇게 규정했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호하는 기본적 노동권과 결사의 자유를 그들에게서 박탈하고, 전체 이주노동자들이 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위협하려는 정부의 시도”라고.
반도 남쪽과 프랑스의 차이는 뭘까. 두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사라진 그날, 프랑스에선 5만여 명(주최 쪽 주장, 경찰 발표는 1만8천여 명)의 교사와 10대 고등학생들이 파리 시내를 관통하는 시위를 벌였다. 공공 지출을 줄이기 위해 교원을 대폭 감축하려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 나라 학교의 학생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교사와 교감들이 학생의 시위 참가를 막으러 나섰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았다. 다음날 서울시교육청은 중·고교 교감 670명과 장학사 222명 등 892명을 5월17일 촛불집회 현장에 내보내 학생지도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령이 보기에 학생부 교사들만으로는 부족했나 보다. 경찰의 정보과 형사는 집회를 신고했다가 취소한 전주의 한 고등학생을 수업 중 불러내 겁주고, 임기를 보장받은 경찰청장도 시위대 겁주기에 여념이 없다. 카를 마르크스가 이 광경을 봤다면 이랬을까? “국민의 먹을거리 안전과 반도 남쪽의 인권을 걱정하는 촛불들이여, 단결하라. 잃을 건 사슬뿐이요, 얻을 건 세상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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