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미국의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한 나라의 학생 체벌 현황을 조사했다. 보고서는 이렇게 실태를 전한다.
“폭력은 학교 생활의 일상적인 부분이다. 교사들은 교실의 규율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기나 손으로 체벌을 가한다. 체벌은 일상적이고 자의적이며 때로 잔혹하다. 멍과 상처는 흔하고 뼈나 이가 부러지는 심각한 상해도 일어난다. …우리가 인터뷰한 이 나라 사람 대부분은 체벌을 인권 문제는커녕 관심거리로 삼지도 않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의 이 나라는 아프리카의 케냐. 그것도 1999년 상황이다. 한 가지 더하자면, 당시 케냐에는 학교 체벌을 규제하는 법규가 형식적으로나마 존재했다. ‘체벌은 특정 행위에 대해서만, 충분한 조사 뒤, 증인 입회하에, 다른 학생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해야 한다. 교장만이 체벌할 수 있고, 규정된 크기의 막대기나 가죽끈을 사용해 남자아이는 엉덩이를, 여자아이는 손바닥을 때릴 수 있다. 여섯 대 이상은 안 되며, 체벌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 초·중등교육법 18조와 시행령 31조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지도’를 할 수 있다고 두루뭉술하게 체벌을 권하고 있다.
이건 우리 사회가 어린이·청소년을 얼마나 하찮게 대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일 뿐이다. ‘인권 OTL-30개의 시선’ 연속기획을 시작한 은 이번호까지 네 차례에 걸쳐 어린이·청소년 문제에 집중했다. 어린이날과 청소년의 달이란 시점도 감안했지만, 대구 초등생 집단 성폭력 사건, 10대가 주도한 촛불문화제 등을 통해 그들이 먼저 자기 이야기를 써달라고 외치는 듯했다. 그리고 학생 독자들이 보내온 사연엔 우리 이야기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호소가 들어 있다.
“방금 학교 다녀와서 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 집 근처에 있는 문제의 ㄷ고에 대해서 기사(710호 ‘시퍼런 가위와 금속탐지기, 무서운 학교’)가 나온 걸 보고요. 이 학교는 일산에서 대학 진학 실적이 가장 높은 학교입니다. ㄷ고의 ‘토봉’(토요봉사)은 학생지도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폭력입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멍청한 년들’ ‘개××들아’ 등등의 욕들을 학생들에게 합니다. 전 나름 모범생으로 학교를 다녀왔지만 가끔은 외치고 싶습니다. 저희의 인권을 지켜주세요! 거창한 인권이 아닙니다. 그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 하나. 욕설 안 듣고, 사랑의 매를 넘어선 폭력을 받지 않는, 인격체다운 대접을 받고 싶다는 것뿐입니다. 제발 저희를 살려주세요!”(일산소녀)
“사회와 국사 과목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학생입니다. 다만 내 오른손에 장애가 있고 ㅅ과 ㄷ, ㄹ, ㅇ 발음이 잘 안 되는 것만 빼고요. 이 두 가지가 다르단 이유로 지금까지 많은 차별과 괴롭힘, 왕따를 당해왔습니다. 초등학교 때 자기 소개하는 시간에 ‘아버지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다’라고 말했는데 ㅅ 발음 잘못으로 ‘자장님’이라 했고 그때부터 친구들은 ‘저 손병신은 자장면집 놈이다’ 하며 놀려대기 시작했죠. 심지어는 선생님 중에서도 저를 은근히 차별하는 분도 있더군요.”(중학교 3학년인 한 학생)
10대, 돌이켜보면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흐트러진 외모 하나에도 남들 눈길이 어떨까 100번도 더 고민하고, 석양을 바라보며 아득한 인생의 수수께끼에 마음을 태우기도 하며, 고전 속의 한 문장만으로도 정신을 1~2cm씩 키워내고, 마음에 품은 친구(이성이든 동성이든)와 손이라도 잡고 나면 빅뱅의 힘으로 심장이 터지고, 맑은 거울 같은 눈으로 정의를 분간해내며, 천 갈래 만 갈래 뻗어나간 미래의 꿈에 행복한 열병을 앓는….
그 아름다움을 억눌린 건 이번호에서 만나본 동성애자 10대만이 아니다. 모든 10대의 절규와 속삭임과 깔깔거리는 웃음 속에까지 우리 사회가 흘려버린 아이들의 진실이 숨어 있다. 굳이 인권이란 잣대가 아니어도 좋다. 바야흐로 총체적인 성찰의 데드라인이 왔다. 그러니 먼저, 저 아름다운 이름 그대로 아이들을 불러보자. 그리고 말하자, 어른들이 잘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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