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린 새벽의 아이들’ 이후, 학교에 재학 중인 이주·탈북 청소년이 전해온 ‘쓰라린 학교’
▣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학교는 정말 짜증나요.”
유정(15·가명)이는 학교라면 ‘이가 갈린다’고 했다. “교복 치마를 줄이거나 화장을 했다가 걸리면 담임 선생님 눈빛이 장난 아니에요. 친구들과 함께 걸려도 저만 차별해요. 걸핏하면 대놓고 ‘너 이런 식으로 하면 (재학과 관련한) 지원을 끊어버린다’고 협박한다니까요.” 몽골 이름인 ‘미르텐’ 대신 한국 이름을 쓰고 있지만 학교 선생님들은 늘 자신을 ‘외국인’이자 ‘불법 체류자’로 취급한다고 한다.
청소년 혜택 못 받고 주민번호 2000000
708호 표지이야기 ‘쓰린 새벽의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노동하는 이주·탈북 청소년 문제를 다뤘다. 보도가 나간 뒤 학교에 재학 중인 아이들도 자신이 처한 ‘힘든 현실’을 밝혀왔다.
유정이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 유정이의 부모는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노동을 하고 있지만 유정이의 신분은 ‘미등록’이다. 현행법으로 외국인 전문기술직 종사자는 가족과 함께 입국해 생활할 수가 있으나, 이주 노동자의 대부분인 생산기능직 종사자는 거주를 목적으로 가족을 동반할 수 없게 돼있다. 이 때문에 부모는 합법 체류자라고 하더라도 자녀는 대부분 비합법적 경로를 통해 입국한 미등록 외국인이 된다. 유정이도 그런 경우다.
“제 신분이 불안하니까 늘 ‘학교에서 사고치면 끝장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들의 ‘지원을 끊겠다’는 협박은 그래서 가슴을 찌른다. 중2 때부터 시작한 한국 학교 생활은 이제 3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한창 멋 부리고 떠들 나이, 자신을 ‘외국인 문제아’ 보듯 하는 선생님의 눈빛을 보면 반항심만 커져간다.
“우리는 버스 탈 때 청소년 요금도 적용 안 돼요.” 무비자로 있으니 신분확인이 안 되고, 신분확인이 안 되니 각종 청소년 혜택에서 제외된다. 은행 거래도 할 수 없고 인터넷 사이트 가입도 실명 확인에서 가로막힌다. 학생증에까지 주민등록번호가 찍혀 나오는 ‘이상한 나라’에서 그들의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남자 ‘1000000’, 여자 ‘2000000’이다. 누가 볼까, 늘 번호가 있는 면을 밑으로 둔다.
지현(15·가명)이는 2년 전에 한국 남성과 재혼한 엄마를 따라 한국에 들어왔다. 엄마가 재혼한 지 2년 만이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몽골에서 이모와 살았다. 지금은 어엿한 중학교 2학년. 한데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당연히 학교 수업도 따라갈 수 없다. “한국말이 잘 안 되니까 친구 사귀기도 어렵고… 자꾸 몽골에 있는 친구들이 생각나요.” 지금은 인근 교회에 다니며 한국말을 배운다. 엄마는 엄마대로 한국 사회와 시댁에 적응하느라 바쁘고 아빠도 일이 바쁘다. 조용히 적응해 사는 것은 온전히 아이의 몫이다.
몽골인 한글학교를 운영하는 박규영 선교사는 ‘아버지의 결정’에 좌우되는 이주여성 재혼 가정의 현실을 지적했다. “재혼한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경우에 한국 아버지의 경제적 능력이나 인성에 따라 아이들이 별 문제 없이 지내기도 하고 방황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또 “실제로 매일 두들겨 맞고 지내면서도 비자 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엄마도 아이도 아버지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다. 집에 가서 보면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우리 반에도 탈북자 있어요, 저기!”
친구들의 시각도 벽이 된다. 혜영(18·가명)이는 얼마 전 ‘아우팅’을 당했다. 애초부터 학교 적응이 어려울 것 같아 선택한 검정고시 학원에서 기어이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윤리 교과 시간에 선생님이 ‘북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한 학생이 “우리 반에도 탈북자 있어요, 저기요!”라고 외쳤던 것. 10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웅성이며 손가락이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혜영이는 쏠리는 시선 속에서 새빨개진 얼굴을 푹 수그렸다. “도망치고 싶었죠. 공부고 뭐고, 내가 왜 여기 앉아 있나 싶더라고요.”
이후 혜영이는 학원마저 그만뒀다. 다행히 한 시민단체를 통해 새터민 아이들의 공부를 1 대 1로 도와주는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연결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쟤가 탈북자예요!”라는 손가락질은 꿈에 나올 정도로 생생하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공부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혜영이는 “그래도 학교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는 말을 남겼다.
미주(16·가명)는 한국인과 다른 머리색·눈동자색 때문에 고생했다. 몇 대 위 조상에 러시아인이 있었다는 그의 머리색은 노란빛이 도는 갈색. 눈동자도 투명한 갈색이다. 몽골에서 한국에 온 지 3년 만에 초등학교 6학년으로 ‘입학’했고 중학교에도 진학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늘 선생님들의 ‘단속 대상’이었다. 선생님들은 볼 때마다 염색과 컬러렌즈 착용을 의심했다.
결국 미주는 학교에 조용히 다니기 위해 머리를 ‘한국 사람처럼’ 검정색으로 염색했다. 염색 의혹을 뿌리치기 위해 염색을 한 셈이다. 그렇게 노력해도 한 선생님이 그의 눈 색깔을 보고 ‘컬러렌즈를 낀 게 확실하다’며 눈동자에 손가락을 갖다댔다. “그런 식의 문제아 취급은 정말 지긋지긋해요.” 그는 한국말을 배우는 데만도 2년 가까이 걸렸고 중학교를 다니는 것도 부모님이 무척 애쓴 결과이기에 학교를 무사히 다니고 싶지만 이제는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 이은하 팀장은 “미등록 이주아동 한 명을 중·고등학교에 입학시키려면 수십 군데를 쫓아다니며 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어려운 입학 과정이 지나면 아이들은 또 다른 벽에 부딪힌다. 우선 한국말을 몰라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다. 학교에서는 좀처럼 이 부분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한국말을 배울 만하면 교사와 친구들의 편견이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학습부진, 신분 노출의 불안, 편견…
삶의 터전을 옮겨 힘겨운 적응을 해나가는 이주·탈북 청소년들은 모두 가슴 밑바닥에 ‘신분 노출의 불안’을 갖고 있다. 이런 아이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학교라면 더 이상 아이들에겐 ‘안전한 곳’이 아니다. 이은하 팀장이 “(지금은 입학 자격도 주지 않아 더 문제지만) 단순히 입학 자격만 준다고 아이들의 교육권이 확보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라고 강조하는 까닭이다. 아이들이 ‘쓰라린 학교’를 포기한 채 ‘쓰린 노동의 새벽’을 맞도록 방치한다면 이주·탈북 청소년들이 노동에 내몰리는 악순환을 끊기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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