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현 한겨레21 편집장 piao@hani.co.kr
1.
지난해 이맘때 한 택시기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외치며 분신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텅 빈 가슴으로 에 칼럼을 썼다. 저 칠흑 같은 죽음 너머가 두렵지 않았느냐고, 그에게 묻고 또 물었다. 죽지만은 말아달라는 윽박지름이었다. 칼럼이 실리고 며칠 뒤 그는 고통스런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고 허세욱씨의 1주기 추모제가 4월15일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렸다. 이제 그것은 아주 작은 기사였다. 이명박 새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허씨가 목숨을 내놓아 바꿔놓은 것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 그 소박한 꿈을 꾸던 택시기사가 직면했던 건 거대한 바위였다. 몸을 사른 불꽃보다는 정과 망치의 쉼없는 부딪힘으로만 깰 수 있는 바위였다.
그래서 그때 중국 사상가 량치차오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들은 지금 한 치든 한 푼이든 다만 전진하기만 하면 된다… 우리들은 길이 멀어 도달하지 못함을 깨닫고도 ‘죽은 후에야 그만둘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 이는 곧 공자의 ‘그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이를 하는’(知其不可而爲之者) 것이 된다… 그러므로 그 생활에는 춘의(봄의 마음)가 깃들게 된다.”
허씨는 누군가의 마음에 춘의를 지펴주었을 것이다.
2.
김용철 변호사는 또 다른 허씨다. 그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비리 의혹을 폭로하면서, 육체적 자아 대신 사회적 자아를 태웠다. 그리고 삼성특검 수사결과가 발표되던 날, 피로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하고 싶다.” 사기업이 국가기관을 오염시키지 않고 누가 저질렀든 범죄는 꼭 응보를 받는 세상. 그 상식의 세상을 꿈꾸던 김 변호사도 무소불위 거대기업의 높은 벽에 직면했다. 그런 절망은 여러 곳에 있다.
“우리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미국의 사회운동가 데릭 젠슨은 환경운동가인 친구 캐런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캐런은 부활절 장식용 백합을 재배하기 위해 1에이커당 건조 화학물질 17만120파운드와 액체 독성물질 3만2652갤런을 쏟아붓는 농업자본에 맞서 외롭게 싸웠다. 독성물질 중 메탐소디움이란 놈은 1ppt(1조분의 1ppm) 수준으로도 독성을 갖는다고 한다. 젠슨은 답한다. “네가 그 얘기를 하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리고 그의 책 에 이렇게 썼다. “이런 문턱을 넘기를 계속해서 힘껏 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이 (내겐)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문화를 되살리는 것이 불가능함을 아는 것은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솟게 했다.” 그는 이것을 감정·정신의 ‘주짓수’를 거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 변호사가 특검 수사 발표 이튿날 “인생을 걸 만한 일을 진짜로 찾은 겁니다”라며 이 회장 일가와 삼성을 역사의 법정에 세우겠다고 말한 걸 보면, 그도 한바탕 정신의 격투기에서 승리한 듯하다.
3.
하영식 전문위원이 니카라과에서 만난 산디니스타 여전사 마르타 베로테란(52~54쪽)은 197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게릴라 투쟁을 벌이며 수많은 생사의 고비와 절망의 순간을 견뎠을 것이다. 밀림을 호령할 때나, 혁명에 성공한 뒤 평범한 식당 주인이 된 지금이나, 그는 그저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한다. 그런 이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저 목표는 더 이상 위압적인 바위나 벽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하 전문위원 말대로, 이런 이를 만나는 건 행운이다.
허세욱과 김용철. 우리에게도 그들이 있어 행복하다. 물론, 진한 눈물을 머금은 행복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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