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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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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의 자살

등록 2008-02-22 00:00 수정 2020-05-03 04:25

▣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당신이 살고 있는 집 앞마당에 600년 묵은 나무가 있었다. 어느 날 일어나 마당에 나가보니 그 나무가 깡그리 불타고 시커먼 잿더미 속에 그루터기만 혼자 멍하고 있더라. 당신도 망연자실해진다. 아이들이 잠 깨어 재롱부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온 몸을 휘감는 괴로움은 우선 ‘내가 무얼 잘못했기에 이런 동티가 날까’이다. 다행히 불지른 놈이 잡혔고 불지른 사연도 실토를 얻었다. 그런다고 그 느낌이 사라질까? 잠자리에 들어도 생각이 날 것이다. 이 집에 언제 이사왔는지 찾아본다. 1년 전인가? 세 달 전인가? 혹은 50년 전의 우리 아버지 때인가? 600년 된 저 나무는 그 앞을 지나가는 미친놈 미친년을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닐 터인데, 왜 하필이면 내 눈앞에서 이렇게 사라져야 했나?

세상에 우연은 없다. 원래 예부터 정신이 깨어 계신 나이든 분들은 흰 터럭이 머리를 덮기 시작할 때부터는 자신들이 언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지를 헤아리면서 당신들의 사랑스런 자식들이 하는 일을 유심히 본다. 아기들이 잘 살고 있는지. 그리고 혹시 녀석들 사는 것에 내가 짐이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다 때가 되면 조용히 사라지신다. 깨어나 보니 그분이 이부자리에서, 그분의 신발이 댓돌에서, 그분이 아끼던 옷이 옷장에서 사라진 것을 알게 된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운다. 며칠 뒤 그분의 쪼그라든 주검이 산꼭대기나 강 언저리 어디에서 발견된다….

돈벌이에 끌려나온 할아버지 할머니

돈벌이도 좋다. 눈요기도 좋다. 그리고 돈을 벌어 눈요기를 하거나 눈요깃거리로 돈을 벌거나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좋고 좋다. 하지만 문화란 오래고 오랜 우리의 집단적 삶이 담겨 있는 그릇이다. 그것까지 꼭 다 들어내서 눈요기로 삼고 돈벌이로 삼아도 좋을까. 물론 그럴 수 있다. 더욱이 이제 ‘금융허브’로 새로 태어날 서울은 600년 넘게 오래된 도시가 아닌가. 비록 대부분 포클레인으로 뻐개고 ‘공구리’로 발라버렸지만, 남은 것들은 다 구경거리로 만들어 돈 되도록 하는 것이 후손의 ‘도리’가 아닌가. 저 쭈글쭈글한 망텡이들을 관광용으로나 쓰지 뭘 하겠는가. 필자의 엽기적 선동? 문화관광부의 홈페이지를 가보라. “문화, 관광, 체육: 상인(商人)의 후각으로 미래를 연다”는 문구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숭례문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제 자식들의 돈주머니를 불려주기 위한 구경거리로서 주름살 가득한 얼굴, 호호백발 머리 그대로 도시 한가운데로 끌려나왔다. 연간 17억원을 투여해 괴상한 포졸 복장을 두른 ‘의장대’가 매일 쇼를 하고 간다. 그러면 구경꾼들은 플래시를 터뜨리며 깔깔거린다. 그들이 사라지고 밤이 되면 온갖 시정잡배들의 거친 희롱과 시비가 시작된다. 돌보기로 되어 있는 자식들은 그놈의 ‘CCTV’라는 얄궂은 물건 하나를 마치 중환자실 바이탈 사인(VITAL SIGN)처럼 꽂아놓고 쿨쿨 자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몸에 담고 있는 600년의 이야기는 시작하는 즉시 “또 그 소리! 노망 시작!”이라는 싸늘한 메아리만 맞을 뿐이다.

장례식 꼴이 가관이다

만물에는 끝이 있다. 600년간 눈비 맞으며 무거운 기와를 지고 버텨온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 진리를 모를 리 없다. 자식들은 ‘돈 냄새 킁킁거리며 미래를 열기에’ 바쁘다. 플래시에 지치고 거친 희롱에 움츠러들고 무관심에 헛헛해진 그들의 눈에는 차디찬 서울의 야경 아래 ‘747 경제’와 ‘금융허브’와 ‘대운하’로 들뜬 자식 새끼들의 모습만 보인다…. 그날 밤 서울 하늘은 유난히 차가웠다. 고려장을 가봐야 산짐승 들짐승만 좋은 일이다. 차라리 이 차가운 서울 도심의 밤공기라도 덥혀주고 가자…. 그렇게 몇 시간을 활활 불타다가 정말 남김없이 태우고 사라지셨다.

아니나 다를까. 모든 장례식에서 벌어지듯, 자식들 하는 꼴이 가관이다. ‘Hi Seoul!’ 어쩌고 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길가로 끌어낸 장본인은 벌써부터 장례식 부좃돈들 내라고 눈이 벌겋다. 그렇게 600살 잡수신 분이 구경거리가 될 때마다 그 앞에서 흐뭇하게 ‘V’ 사인 그리다가 프랑스에서 끌려온 누구는 잘리기 열흘 먼저 사표 던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뻗댄다. 자기야말로 ‘종손’이라고 우기던 무슨 무슨 정당들은 서로 들고 일어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네가 죽였다면서 소주병을 깰 기세이다.

이 흉악한 장례식 구석에 웅크린 우리는 숨죽여 눈물만 흘린다. 어째서 숭례문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렇게 가셔야 했나. 하필이면 내 눈앞에서. 내가 무얼 잘못했나. 내가 무얼 잘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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