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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올해의 사자성어, 자수성가

등록 2007-12-28 00:00 수정 2020-05-03 04:25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font color="#00847C"> 이명박, 노무현, 김대중에게는 있고 정동영, 박근혜, 정몽준, 이회창에게는 없다.</font> 미모도, 재력도, 성깔도, 말발도, 지역도 아니고 다름 아닌 자수성가 이미지다. 그러니까 실체라기보다는 이미지 말이다. 참고로 자수성가하고도 자수성가했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비극의 홍길동, 정동영이 첫 대선 방송광고를 통해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은 “저 자수성가한 거 맞거든요” 아니던가. 2002년, 2007년 자수성가의 종목만 바뀌었다. 노무현의 정치적 자수성가에 이은 이명박의 경제적 자수성가, 당적은 달라도 자수성가 2연패다. 한 명은 불도저로 밀어붙이고, 또 한 명은 돈키호테처럼 뛰어들고, 마초 신공도 거기서 거기다. 1997년의 인동초도 20세기 자수성가 버전 아니던가. 바야흐로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저물고 있지만 용이 되고 싶은 개천의 미몽은 끝나지 않았다. 자수성가의 신화가 내게도 임하기를 한국인은 오늘도 꿈꾼다. 이 꿈의 끝을 잡고. 그래서 이명박 신화에 내맡긴 그들의 꿈은 구슬프고 처연하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이들에겐 꿈이 있는 것이다. 허황된 꿈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싶은 것이다. 한국이 그토록 사랑한 사나이들, 심형래·황우석에게도 있다. 물론 자수성가의 신화다. 그리하여 여기는 아직 내일 꿈이 살아 있는 신화의 나라, 다이내믹 코리아!

<font color="#00847C">이란에도, 미국에도 있다. 무슬림도, 사막도, 축구도 맞다.</font> 그리고 하나 더, 동성애자 살인이다. 12월5일 쿠르드족 이란인 눌리피 마크반 물루자데가 숨졌다. 올해 21살. 그가 숨지는 순간을 부모도, 친구도 몰랐다. 갑자기 이란 사법부가 그를 처형한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이란에서 죽어 마땅한 마크반의 혐의는 성폭행. 정확히 동성 간 성폭행. 마크반이 13살에 8살 소년을 강간했다는 것이다. 이란 최고법정은 8월 마크반에게 사형을 언도했고, 국제엠네스티 등이 나서 구명운동을 벌였지만 허사였다. 마크반은 법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지만 역시나 허사였다. 이성으로 판단할 이성 간 범죄가 아니고 동성 간 범죄가 아니던가. 율법의 나라에서 청년은 그렇게 숨졌다. 유엔에서 사형제 폐지 결의안이 나온 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때였다. 말해 무엇하리, 미성년 시절의 범죄로 사형에 처하는 것은 국제법의 금기다. 이란에서 사형제라는 ‘살인 면허’를 가진 국가가 죽인다면, 미국에선 민간이 나선다. 그곳에선 이따금 동성애자, 더구나 청소년이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자)에 맞아 죽는 사태가 발생한다. 심지어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은 희생자의 장례식에 ‘동성애자는 지옥에 간다’는 피켓을 들고 나온다. 그러니까 그것은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세속화 문제다. 하느님의 율법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자들이 언제나 문제다. 그리하여 세속화는 나의 신앙. 참고로, 2004년 유엔에 성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는 브라질 결의안이 상정되자 가톨릭 국가와 이슬람 국가는 종교의 차이를 넘어 견결히 연대했다. 그리고 부결시켜버렸다. 하느님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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