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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단란한 공무원들

등록 2007-10-26 00:00 수정 2020-05-03 04:25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그래서, 10억원입니다!” 판사는 법봉을 두드리며 엄숙한 기분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2005년 3월27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88 일대 ‘미아리 텍사스’에서 난 불로 여성 다섯 명이 숨졌다. 업주는 여성들이 잠든 건물의 창문을 쇠창살로 막았고, 베니어합판으로 가리기도 했다. 여성들은 서희·진아·경아·연희·예슬·현정·가을·자두 따위의 가명으로 서로를 불렀다. 그날 가게에는 여성 9명이 잠자고 있었다. 4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고, 1명은 병원에서 치료받다 숨졌으며, 1명은 중상을 입었고, 2명은 무사히 대피했다. 함께 있던 ‘주방 이모’의 행적은 알 길이 없다. 유족들은 국가와 포주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법원은 “포주는 유족들에게 10억원을 주라”고 판결했다. ‘포주’ 고아무개씨는 어떻게 그 돈을 채워넣을까. 다른 곳에서, 다른 여성들의 몸을 팔아 차곡차곡 그 돈을 모으진 않을까. 삶은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그래서, 이회창입니다!” 이미 대중의 기억 속에서 가물가물해진 그 이름이 다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기란 난감한 일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그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2연패하며 정계에서 은퇴했다. “이번에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꼭 당선시켜야 한다”던 그의 부인의 결기 어린 외침이 머릿속을 맴돈다. 복귀 시나리오. 하나,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검증 국면에 걸려들어 지지율이 급락한다. 둘, 좌파 정권(?) 재집권 저지를 위해 보수 세력이 총궐기한다. 셋, 그들의 옹립을 받은 이회창 전 총재가 화려하게 귀환한다. 밑거나 말거나지만, 그가 화려한 복귀를 위해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소리도 간간이 들려온다. ‘올드 보이’들의 로망에 대한민국의 표심은 움직일 것인가? 다음 대선에서는 공화당 허경영 총재님에 이어 계룡산 정도령께서 출마를 결심하실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 좋은데 그래도 ‘창’이 ‘MB’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느는 건 결국, 한숨이다.

자고로 살다 보면, 단란해지고 싶은 때도 있는 법이다. 우리 조세 행정의 선진화를 위해 피땀 흘려 연구하고 계신 조세연구원 선생님들께서 무려 796만원에 달하는 업무추진비를 단란주점에서 사용했다가 국정감사 자료를 정리하던 국회의원 보좌관들의 눈에 딱 걸리고 말았다. 물론 연구원에서는 “전 직원 연찬회, 외국인 및 학회 회원과의 간담회에서 쓴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구체적인 사용처는 확인을 거부했다. 국토연구원 원장님께서도 매일 같은 철야 연구에 고된 심신을 달래고 싶으셨는지 100만원이나 되는 업무추진비를 단란주점에서 사용하다 들키고 말았다. 예로부터 훔쳐먹는 사과가 더 맛있다고, 남의 돈으로 단란해지면 술맛도 더 좋고, 다음날 숙취도 심하지 않은 법이다. 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단란해질 때는 아는 사람 다 불러서 손 잡고 같이 가야지, 자기들끼리만 손 잡고 몰래 가면 꼭 이렇게 뒷말 나온다. 현금 결제하면 보통 10% 할인해주는데, 단골집 바꿔보실 마음은 없으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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