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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명이 묶인 족쇄

등록 2007-02-03 00:00 수정 2020-05-03 04:24

▣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이·찬·수(44)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644호의 ‘사람이야기’에 사연이 실린, 재임용 탈락 교수입니다.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불상에 절을 했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해 1월 기독교계 학교인 강남대의 재임용에서 탈락했습니다.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 사건’은 이 전 교수와 같은 재임용 탈락 교수들의 처지를 새삼 떠올리게 했습니다. 입에 담기 어렵지만, 많은 이의 무관심 속에 우리 사회가 ‘석궁 사건’의 근원적 불씨를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이찬수 전 교수는 재임용 탈락 뒤에 교육인적자원부 교원인사소청심사위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2005년 1월 개정된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강남대의 조처가 타당한지를 심사 청구한 것입니다. 그 결과 지난해 5월 소청심사위는 ‘재임용 거부를 취소하라’며 이 전 교수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하지만 그뿐, 이 전 교수는 여전히 ‘거리의 교수’일 따름입니다. 강남대는 소청심사위 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고,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전국교수노조는 지금 우리 사회에 이런 ‘거리의 교수’가 적어도 114명에 이른다고 집계했습니다. 2005년 특별법이 개정된 뒤, 재임용 탈락 거부 취소 판정을 받았지만 복직되지 않은 이가 8명이고, 특별법 개정 전 탈락했다가 취소 판정을 받고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106명입니다. 특히나 특별법 개정 이전에 해직된 교수의 경우엔 재임용 탈락 뒤 소청심사 청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2005년에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된 교원소청심사특별위원회에 재임용 탈락의 부당성 여부를 물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모두 117명이 거부 취소 판정을 받았지만 복직된 이는 11명에 불과했습니다. 취소 판정을 받은 이들 가운데는 학교에서 쫓겨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1996년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명호 전 교수는 특별위원회에 소청심사를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교원 지위 향상을 위한 특별법’을 보면, ‘심사위원회의 결정은 처분권자를 기속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기속’(羈束)이란, 법의 구체화 또는 집행을 의미합니다. 이성대 교수노조 교권실장은 “이런 법적 규정에 근거해 교육부가 대학에 복직을 강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학은 요지부동입니다. “정관이나 인사규정 또는 임용계약에 재임용 강제 조항이 있거나 그 외의 임용계약이 반복 갱신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임용 기간이 만료된 사립학교 교원은 대학 교원 신분을 상실한다”는 대법원 판결 등을 근거로 복직 조처를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임용 기간이 끝났으면 그만이라는 것인데, 그야말로 법 규정과 판례가 통일성을 상실한 셈입니다.

‘석궁 사건’을 교수 개인의 인격적 자질이나 사법부 권위의 위협 문제로만 국한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기회에 교수 재임용제와 임용 탈락자의 구제 등에 대한 근원적인 사회적 논의로 진전시켜야 합니다. 흔히 교수는 ‘상아탑의 주체’로 존경받지만, 대학이라는 우월적 ‘권력’ 앞에선 약자일 뿐입니다. 재임용 탈락이 부당하다는 정부 판정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떠돌아야 한다면 그의 인권은 누가 보장해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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