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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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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비와 인권

등록 2007-01-23 00:00 수정 2020-05-02 04:24

▣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헌법 개정이 다시 논의되고 있다. 지금까지 9차 개정에서 끊임없이 논의된 대통령 임기에 대한 것이다. 종래 나는 그런 개헌에 반대했고 지금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반면 꼭 개헌을 해야 한다면 인권조항, 특히 우리가 1990년 비준해 우리의 법이 된 국제인권규약과 상충되는 부분을 개정하자고 주장해왔다. 가령 우리 헌법에 명시규정이 없는 ‘사상의 자유’ 같은 것을 분명하게 규정해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시대착오적 논의를 끝내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논의된 그런 여러 가지 필요한 개정 사항 외에도 전혀 논의되지 못한 부분, 가령 중등 및 고등교육의 평등과 무상화에 대한 것 등 많은 문제가 있다.

국제인권규약의 무상교육 항목

국제인권규약 가운데 사회권규약 제13조 2항 bc는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평등 및 ‘무상교육의 점진적 도입’을 규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평등에는 면학조건도 포함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학비를 벌기 위해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면학의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한다면 평등한 것이 아니고, 그런 절대적 빈곤자에게는 학비를 징수해서도 안 된다. 또한 빈곤자에게 장학금이 아니라 대여장학금을 아무리 확대해도 면학을 포기하는 결과가 되므로 평등이 아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무상화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이 무상이 아니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처럼 자국법이나 자국 사정과 상충되는 경우 국제인권규약을 비준하면서 유보를 할 수 있으나 우리 정부는 제13조에 대해 어떤 유보도 하지 않았다. 반면 가령 일본에서는 국공립학교 진학자에게도 비진학자와 사립학교 진학자와의 부담형평의 관점에서 부담을 요구하고, 사학을 포함한 무상교육의 도입은 사학제도의 근본 원칙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그것을 유보해서 사회권규약과의 저촉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부담 형평의 비교 대상이 되는 비진학자가 고학비 등의 경제적 이유에 의해 생긴다면 그런 비진학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사회권규약에서 말하는 교육의 평등에 위반하는 것이므로 일본에서의 주장은 부당하다. 또 다른 이유인 사립학교 진학자와의 부담 형평이라는 점도 경제적 이유로 사립학교에 다닐 수 없는 학생들에게 사립학교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학비를 부담시킨다는 것이므로 정당화될 수 없다. 국가는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공립학교 제도를 유지할 책임이 있고, 그 평등의 성취를 방해하는 경제적 장애를 설정해서는 안 된다.

여하튼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그러한 유보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한 인권침해가 생기고 있다. 물론 ‘점진적 도입’이라는 것을 종래 우리나라 헌법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정책적 목표를 설정한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변할 가능성도 있으나, 이는 사회권규약의 해석과는 맞지 않는 이야기이고, 헌법 해석으로도 부당한 주장이다. 즉 사회권규약은 실질적인 ‘점진적 도입’을 위한 법적 의무, 가령 사학조성비의 증액이나 장학금의 급여 등 교육정책과 제도의 개혁에 의한 점진적 도입을 요구하고 이에 반하는 후퇴는 사회권 규정에 위반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 헌법의 해석으로도 마찬가지 결론이 나온다.

비싼 등록금은 인권 문제

그러나 적어도 1990년 사회권규약 비준 뒤 그런 정책과 제도가 취해져 학비가 감면되기는커녕 매년 학비는 일반물가 이상으로 급상승해 신입생이나 재학생의 부담은 더욱 강화돼왔고, 저소득층의 자녀에게는 대학 진학 내지 진급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왔다. 이는 명백히 1990년 사회권규약 비준 이후 계속 누적된 위반임에도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부유한 가정의 자제가 아니면 수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고, 특히 일류 국립대학 합격자의 많은 수가 부유한 가정 출신이라는 점도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권의 침해이자 재산에 따른 차별로서 사회권규약에 명백히 위반된다. 이는 국공립대학만이 아니라 사립대학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게다가 국공립대학이 법인화해 실질적으로 사립대학화되면 빈곤자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해가 바뀔 때마다 대학은 등록금을 인상했고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소요로 몸살을 앓아왔다. 이제 그것이 우리 헌법과 다름없는 사회권규약에서 인정한 대학교육에 대한 인권 문제라는 인식 아래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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