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2007년의 출발이 우울합니다. 즐겁지 않은 ‘폭력’ 문제를 생각하게 된 탓일 겁니다. 이찬·이민영 연예인 커플의 파경을 불러온 ‘폭력’ 사태가 고민을 던졌습니다. 두 사람은 한때 인터넷 포털의 인기 기사 상위 순위 5~6개를 독차지할 정도로 화제 그 자체였습니다.
먼저 민망스럽습니다. 대중이 품는 고상한 환상과는 거리가 멀게 양쪽은 적나라한 공방을 벌입니다. 한쪽이 “의견 마찰로 서로 따귀를 7~8차례 주고받았을 뿐 절대 배를 차거나 때려서 유산시킨 일이 없다”고 주장하면, 상대는 “수십 차례 얼굴과 머리를 구타했고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 운전을 하다 발로 차 밖으로 내동댕이쳤다”고 반박합니다. 여기에다 폭력의 배경을 놓고 갈 데까지 간 물신주의까지 가세하면서 요지경 양상마저 보여줍니다. 33평 전세 아파트는 작으니 큰 아파트를 마련하라거나, 임신을 해서 CF를 찍지 못했으니 5억원을 피해 보상하겠다는 각서를 써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사실관계에 대한 ‘진실게임’에다, “맞아도 싸네”라는 일각의 동정론이 겹쳐지면서 호기심은 증폭되지만, 그럴수록 사태의 본질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약자의 자기방어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원칙 말입니다.
기실 우리는 워낙 다양한 폭력에 노출된 탓에, 폭력에 무감각하거나 심지어 ‘관대’하기까지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혹은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아이를, 교사가 학생을 때리는 일은 너무 쉽게 목격됩니다. 지난해 한국여성상담센터가 서울 시내 기혼 남녀 818명(여성 552명, 남성 2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남성의 33.1%가 부부 갈등 때 폭력을 사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세 명 가운데 한 명꼴입니다.
이런 ‘일상화한 폭력’의 내면에는 ‘맞을 만한 짓’이라는 그릇된 통념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잘못을 교정하는 도구로서 ‘폭력론’입니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가해자 남편들은 하나같이 아내를 때린 것이 아내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아내가 잘못을 하면 남편이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가정폭력의 뿌리가 숨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폭력은 결코 의사소통 방식이 아닙니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길을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공격 행위일 뿐입니다. ‘맞을 만하다’는 가해자의 논리는, 뒤집어보면 그 자신도 언제든지 ‘맞을 짓을 했다’는 피해자의 처지로 바뀔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맞을 만한 짓이란 없습니다.
지난해 8월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한 고교의 체벌 문제를 성토하는 청소년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그 시위를 보도한 기사를 읽다가 청소년들의 외침에 너무나 부끄러워진 적이 있습니다(저도 ‘가르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손찌검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찬·이민영 두 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은 그 외침은 이렇습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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