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김현영 동덕여대 강사
며칠 전 여성가족부는 연말 회식모임에서 성매매 업소에 가지 않는다고 약속한 사람들에게 회식비를 지원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다가 네티즌의 호된 반발을 샀다. 남성들을 모두 잠재적인 가해자로 취급하냐는 목소리가 압도적이었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다는 비판이 뒤를 이었다. 지난달 26일, 한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이 기사가 뜨고 비난 여론이 확산되자, 한나라당에서는 ‘정신 나간 여성부’라는 발빠른 논평이 나왔다. 대한민국 건전한 남성들의 자괴감을 자극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여성부에서는 성매매 업소에 출입한 남성 성구매자의 93%가 음주 뒤였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예방 차원에서 이런 행사를 기획했다고 해명했다.
“정신 나간 여성부” 논평 낸 한나라당
물론 모든 남성이 성구매자는 아니자만 성에 대한 남성중심 문화가 성매매의 주요 원인임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단발성 행사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성매매 문화를 단번에 변화시키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행사의 총 경비는 5800만원이었다. 나는 이 돈을 마사지 업소의 변종 성매매에 대해 “짙은 안마”라고 말하고, 성매매 특별법이 남성들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한나라당의 모 남성 의원들에게 기부받아서 진행하는 것이 좋았겠다고 생각했다(참고로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성구매 경로는 집결지 27%에 이어 마사지 업소가 22%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짙은 안마”라고 농담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건전한 대한민국 남자들과 국민의 세금을 그토록 걱정하는 네티즌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아먹는 그 국회의원을 상대로 남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죄를 묻지 않은 걸 감사해할 일이지, “짙은 안마”니, “젊은 남성들의 성욕 해소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느니 등등의 성매매 관련 망언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이 잔뜩 속해 있는 한나라당이 긴급 논평까지 발표해서 자괴심 운운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아닌가.
한나라당의 논평은 “돈으로 성매매를 방지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성매매를 유발할 수 있다”는 ‘걱정’으로 마무리되었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성매매 근절 정책에도 어떤 형태로든 비용이 들어간다.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기 직전 2002년 성산업의 규모는 1일 구매자가 35만 명에 달하고,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1%로 농림업 4.4%에 육박하는 수준이었다.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후, 집결지 수는 줄었지만 변종 성매매 업소는 활개를 치고 있고, 성산업 역시 쉽게 규모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법적 처벌 외에 예비 성구매자들의 대대적인 의식개혁 캠페인과 함께, 여성들의 저임금과 고용불안이 해결되고, 탈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 또한 이 얼마 전 특집으로 실었듯이 포주들이 재개발 이익을 독식하는 등의 부정의가 발생하지 않도록 과감하고 획기적인 그리고 지속적인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모두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 돈 들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돈으로 성매매를 방지하자는 발상이 변종 성매매를 유발하는 게 아니라, 성매매는 남성의 본능이자 문화라는 생각이 성매매를 유발한다.
남성 본능과 자괴감
성매매 근절의 시각에서 보자면, 여성부의 회식비 지원 이벤트나 화이트 타이 캠페인 같은 행사를 통해 성구매 남성들의 자발적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성산업의 규모를 축소시키겠다는 발상이 너무 순진하다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착취와 감금, 매매를 통해 성산업의 이득을 고스란히 누리고 있는 포주들을 신고하는 포상금 제도를 도입하거나, 재개발이 될 집결지 쪽방에 살고 있던 성매매 여성들에게 보상금을 줄 수 있는 방안 등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건전한 남자들이라면 평생 한 번도 성매매 업소에 안 가본 우리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주변에 꽤 많다. 이 남자들은 회식비를 지급해주지 않아도 잘살아왔고, 앞으로도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서 잘살 사람들이다. 자괴감이란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감정을 뜻한다. 괜한 건전한 대한민국 남자들을 앞세울 게 아니라, 한나라당 남성 의원들 스스로 자괴감을 느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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