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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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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악몽

등록 2006-12-01 00:00 수정 2020-05-03 04:24

▣ 박홍규 영남대 교수·법학

서울에서 인권관계 모임에 참석한 뒤 고급 포도주를 얻어마시고 시골에 돌아온 밤부터 계속 배탈이다. 단 하룻밤 서울 길이었는데 그새 차에 치여 죽은 짐승들을 힘겹게 묻으며 600평 밭에서 별안간 고독에 사무친다. 600평이란, 산을 뺀 한반도의 3분의 1, 곧 7천만㎢를 7천만 명으로 나눈 땅을, 우리 부부 두 사람 몫으로 가진 넓이였다. 모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꼭 고만한 땅에 오두막을 짓고 텃밭을 가꾸며 오순도순 사는 것을 나는 꿈꾸었다.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니 몇 억원은커녕 몇 푼돈도 필요 없이 모두 그냥 갖는 땅!

차라리 강철 고독이 그리워

내가 처음 그런 땅을 갖고 싶었던 것은 어릴 적 소로의 글을 읽고서였다. 그가 600평 아닌 6만 평 땅에 홀로 사는 고독을 말한 것이 너무 좋았다.

물론 그 거대한 공간의 고독이란 그 정도 넓이에서 인간은 물론 모든 존재가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를 뜻했다. 곧 농토나 집터가 아닌 자연 그 자체, 소유 대상이 아닌 느낌의 대상을 말했다. 좁은 셋방살이를 했던 젊은 시절에는 무슨 양키 사치냐고 욕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이상하게도 그런 광야의 고독이 그리워져 열심히 찾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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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광야는커녕 단 한 평의 땅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면 어떤 공간의 자유나 고독도 누릴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소유와 자유가 같은 나라! 자유는 소유, 그것도 거의 유일한 자유인 양 치부되는 대한민국! 고독조차 돈을 주고 사지 않으면 누릴 수 없는 나라! 가난한 광야의 시인이여, 이제 광야의 고독은 그대의 것이 아니라 오로지 땅 부자의 것이다!

8년 전 처음 땅을 찾으려 했을 때 누구나 투기성을 말했다. 내가 처음 본 600평 땅은 그 반대였으나, 그 앞의 연꽃 호수, 내 직장까지 걷거나 자전거로 한 시간 이내인 거리, 동네 이름이 당시 내가 읽던 당시(唐詩)를 뜻한 당음(唐音)이라는 이유 때문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샀다.

그러나 지난 8년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하루 한 시간만(소로는 1년에 6주라고 했지만) 일해 우리 부부가 먹을 정도만 가꿀 생각이었으나, 땅을 한 치도 놀려서는 안 된다 하는 바람에 600평 농사를 무리하게 지어야 했다. 게다가 나는 공동체를 꿈꾸면서 귀농한 것이 아니라 고독을 찾아왔는데도, 언제나 이웃과 함께 있어야 하는 시골에 완전하고 거대한 고독이란 있을 수 없었다. 특히 그 순박한 농부들이 가장 보수적이고 물질적이어서 선거 때마다 그런 사람을 뽑는 것에 질렸다. 게다가 그들의 이야기에 반대하면 마을 어른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응징되니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파트 방 책 속에만 숨으면 고독 그 자체였던 시멘트 도시와 함께 자가용의 강철 고독조차 부러워하게 되었다.

이젠 전국이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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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골도 이젠 시골이 아니다. 이젠 전국이 도시다. 게다가 시골은 더욱 위험한 도시의 음지일 뿐이다. 심지어 살인과 강간이 추억인 곳이다. 또 서울처럼 몇 수십 배의 이익을 올려 벼락부자가 되기는커녕 도박처럼 돈만 날린 꼴이 된 억울한 곳이다. 그러니 마음들은 더욱 각박해져 사납기 짝이 없다. 시인처럼 시골에 살아서 도통한 것도, 현명해진 것도, 땅과 하늘, 풀과 나무, 그리고 자기를 바라보는 여유가 는 것도,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졌거나 고독해진 것도 아니다. 얼마 전 80살 앞집 할머니가 새벽기도를 다녀오다가 강간을 당한 뒤 새벽 산책도 그만두었다.

그래도 젊어서는 도시 것을 소화라도 했는데 이젠 고급 포도주 한 잔에도 배탈이 날 정도로 비위만 약해졌고, 저 불쌍하게 죽은 짐승을 위해 울기는커녕 묻을 힘도 없이 그 나무 밑에 나의 재가 뿌려질 600평의 고독에 공포만을 느낄 뿐이다. 그렇게도 좋아한 담도 울도 자물쇠도 없는 집에 이제는 고문기술자가 들이닥치는 그 공포! 도시는 물론 시골조차 비판하다간 그 저주를 받을 공포! 이젠 올 데 갈 데 없는 공포! 아, 고독이 이젠 소유를 넘어 공포가 되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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