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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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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부를 기다리며

등록 2006-10-26 00:00 수정 2020-05-02 04:24

▣ 조영아 소설가· 지은이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차 한 잔을 마주할 시간이면 골목을 누비는 낯익은 오토바이 소리가 들려온다. 일정한 간격으로 가다가 서다를 반복하는 그 소리가 점점 가까워오면 버릇처럼 대문 쪽을 기웃거린다. 혹시나 오늘은 반가운 소식이라도 있지 않을까. 내게는 아직도 우체부가 반가운 사람으로 남아 있다.

가끔 물 한 컵이라도 건네고 싶지만 소심한 성격 탓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런 내게 우연히 우체부 아저씨께 차 한 잔을 대접할 기회가 생겼다.

독촉장, 최후 통첩장, 압류장…

얼마 전 인터넷으로 산 물건이 주문한 것과 다르게 배달되었다. 물건을 산 곳으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우체부에게 물건을 되돌려주면 된다기에 다음날 우체부에게 반송할 물건을 건넸다. 물건을 받아든 우체부는 빙그레 웃으며 “테이프가 있으면 좀 빌려달라”며 적잖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반송을 하려면 포장을 다시 제대로 해서 접수를 해야 하는데, 무지한 내가 이 절차를 생략해버린 것이다. 나는 얼른 테이프와 가위를 대령했고 우체부는 아무 말 않고 뜯어진 포장지에 테이프를 붙였다. 너무 민망하고 미안한 김에 차 한 잔을 내왔다. 일을 마친 우체부는 고맙다며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아껴 마셨다. 그냥 있기가 멋쩍어서 “요즘 우편물이 많이 늘어서 힘드시겠어요?” 하고 운을 띄웠다. 내 물음에 우체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뜻밖에도 우체부의 고충은 다른 데 있었다.

눈만 뜨면 늘어나는 카드와 휴대전화 종류만큼이나 우편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 내용물 또한 달라졌다. 예전처럼 편지나 엽서 같은 건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각종 고지서나 영수증이 대부분이다. 순수한 관계에 의한 것이기보다는 계약에 의해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달갑지 않은 것들이다. 그 속에는 각종 연체 독촉장이나 압류장도 들었다. 하루에도 숱한 독촉장과 최후 통첩장들이 배달된다. 연체 독촉장을 배달하고 얼마 뒤 최후 통첩장을 거쳐 압류장까지 들고 그 집을 또 방문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에는 빈집만 남게 되고 우편함에는 찾아가지 않는 우편물이 쌓인다. 그런 우편물을 배달할 때면 괜히 미안해 고개를 들 수 없단다. “반가운 우편물을 배달해야 나도 좋지요.” 우체부가 이런 죄책감을 느끼는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없는 사람들에게 은행 대출 문턱은 높기만 하다.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카드 대출을 찾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다. 카드 연체에서 카드깡, 고금리의 사채까지. 불 보듯이 뻔한 길인 줄 알면서도 그 길로 들어선다.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개선의 여지는커녕 악순환만 계속되고 차츰 더 심한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독촉장이 날아오고 최후통첩에 압류장까지 날아온다. 있는 사람들은 우량금리로 대우받으며 돈을 쓰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제도권 밖에서 허우적댄다. 이들이 자력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순 없다. 누군들 스스로 그 험한 길을 택하고 싶겠는가. 그건 이들의 의지와 무관한 일이다. 이 사회가, 이들을 그리로 내몬, 공범자이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과 그 설립자에게 올해 노벨평화상이 돌아갔다. 빈곤한 이들에게 무담보 대출을 해준 결과 반 이상이 자립 기반을 가졌고 100%에 가까운 상환율을 보였다. ‘양심도 충분한 담보가 될 수 있다.’ 이 얼마나 낭만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멘트인가. 우리 사회는 왜 이런 게 통하지 않을까. 있는 자들을 위한 우량금리 상품 개발에만 골몰하지 말고 신용불량자의 ‘신용’ 찾아주는 일에 열을 내보시라. 우체부가 왜 고개를 숙이겠는가. 양심도 담보가 되는데 믿음이 금리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믿음이 금리가 되진 못할까

차를 마시고 돌아서는 우체부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착잡했다. 아직도 우체부가 반가운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건 커다란 행운이다. 이 사회에서 그건 어쩌면 특혜이고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더 이상 특혜로 비쳐지지 않는 그날을 기약하며 그리운 이에게 편지 한 통 쓰련다. 가을엔 편지를 쓰겠어요~. 이것도 사치일까.

**조영아씨의 노땡큐!는 이번주로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권김현영 동덕여대 강사가 이어서 집필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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