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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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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친절한 형근씨, 소심한 근태씨

등록 2006-08-09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그분은 친절했다.
옛 안전기획부에 몸담았던 전직 공안검사 출신의 정아무개씨. 그는 “북한이 100년 이래 최대 홍수로 인명피해만 1만여 명이 이른다”며 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주장했다. 그는 “북한에 노인과 어린이가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고도 말했고, “동포애적 입장에서 한나라당이 나서 기초적인 구호에 나서야 한다”고 침을 튀기기도 했다.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아 보이는 그의 옆모습에서 기술자 이근안과 짝을 이뤘던 ‘환상의 복식’조 시절의 위용도, 세상을 호령하던 ‘저격수’ 시절의 냉혹함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람은 큰 충격을 받으면 생각이 변하게 마련이라던데 아무래도 지난해 롯데호텔에서 있었던 ‘불륜의 묵주’ 사건 이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따뜻하게 변한 게 아닌가 싶다. 누가 뭐라 해도 시간은 흐르고, 사람은 변하고, 묵주 속에는 평화가 있다. 그리하여 다시 불러본다. 우리의 친절한 형근씨!

“그러니까 말입니다.
제 말은 그게 아니고 말입니다.” 차기 법무장관으로 거론되던 왕의 측근에 대해 “민심에 어긋난다”며 직격탄을 날렸던 여당 대표 김아무개씨가 결국 꽁무니를 빼고 말았다. 둘의 차이는 분명 박력의 차이였다. 왕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땅을 쪼개고 우리 동네 세탁소 박(48)씨 아저씨의 나른한 낮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말투부터 심히 ‘거시기’하다. “대통령 한 번 하려고 그렇게 대통령을 때려서 잘된 사람 하나도 못 봤다.”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인지, 잘 찾아보면 하나쯤 있는 것인지 알기 힘들지만, 우리의 김아무개씨는 알아서 분위기 파악하고 바짝 엎드리셨다. “저희 말씀은 그 말씀이 아니라 말입니다. 원래 당과 청은 하나인데 말입니다. 기분이 나쁘셨다면 제가 잘못했는데 말입니다.” 변명은 지루하게 이어지고, 우리의 박씨 아저씨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려면 칼 빼들도 덤비지나 말던가.” 그리하여 다시 불러본다. 우리의 소심한 근태씨!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너무 심한 것 같다. “이 상황은 권력투쟁이야.” 우리의 노아무개 대통령은 결국 특유의 직설화법으로 분위기 살벌하게 만들어버리셨다. 분위기 다운되면 잠시 물러섰다 다시 돌아오는 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이거늘 우리의 노아무개 대통령은 “믿고 따르라”며 국민들 다그치기에만 여념이 없다. 그는 자신이 앞서나가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자신의 본심을 헤아려주길 바라는 사람 같다. “나더러 나가라고 하지만 나는 절대 탈당할 생각이 없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맹세코 초등학교 3학년 이후로는 만난 적 없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을 두고 “철없다”고 말하지만, 또 속마음 몰라준다고 서운해할까봐 이만 줄인다. 그런데 못내 궁금한 게 하나 있다. 우리가 알던 그때 그 노아무개씨는 어디 있나요. 대답해보세요, 우리의 무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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