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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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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을 보낼까요?

등록 2006-08-04 00:00 수정 2020-05-03 04:24

▣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하마스 나빠요, 야신 나빠요.”
이런 팩스가 로 날아들었습니다. 5년 전 일입니다.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특별 서신’을 보낸 겁니다. 이 하마스 지도자 야신의 자서전을 연재하기 시작한 직후의 일입니다. 그들은 에 장황한 반론문을 실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야신의 영문 원고 원본도 보여달라고 졸랐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자국에 비판적인 기사가 나갈 때마다 이스라엘 대사관은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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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포기했나 봅니다. 3~4년 전부터 항의가 뚝 그쳤습니다. 비슷한 기사가 워낙 많으니 ‘언론 플레이’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대신 과감한 ‘군사적 플레이’를 택한 걸까요. 2004년 3월22일, 이스라엘군은 미사일 정밀 폭격으로 야신을 보내버렸습니다. 더 이상 자서전 따위는 쓰지 못하게, 쏴죽여버렸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이스라엘을 위대한 나라로 배웠습니다. 누구나 그랬을 겁니다. 남녀가 따로 없는 철통같은 안보 의식. 특히 국민들의 ‘예비군 정신’이 끝내줬던 걸로 떠오릅니다. 교회에서도 이스라엘은 최고였습니다. 성경 공부를 하면서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나치에 의한 수난과 박해를 이긴 점도 드라마틱합니다. 한때 대한민국 사람보다 이스라엘 국민으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겠다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의 이미지는 요 모양 요 꼴이 된 걸까요.

2006년 7월29일 새벽 2시 현재, 서울엔 여름비가 내립니다. 어제도 하루 종일 내렸습니다. 참으로 오랜 시간 꾸준하게 퍼붓습니다. 한 달 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도 ‘여름비’가 쏟아졌습니다. 작전명만 ‘여름비’일 뿐, 실상은 ‘여름피’였습니다. 그 ‘여름피’는 지금 레바논으로 옮겨 줄창 내립니다. 피가 응고된 거대한 우박 같습니다. 그 피를 거머리처럼 빨아먹는 존재가 이스라엘이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요?

이스라엘의 레바논 대민 공습이 도를 넘었습니다. 한국의 수구적인 신문들마저 이스라엘을 질책합니다. 그래봤자 눈 하나 껌벅할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좋은 방법이 있긴 합니다. 이라크에 파병한 자이툰 부대를 레바논으로 돌려 이스라엘군을 말리는 겁니다. 그럼 당연히 세계적인 뉴스가 되겠지만, 실현 불가능한 공상입니다.(앗, 자이툰 부대 다녀온 분들은 100쪽 하단을 꼭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씨가 폐허가 된 베이루트를 찾았습니다. 본래 지난호 발간에 맞춘 기획이었습니다. 한미 FTA로 일색화된 특대호를 만드느라, 한 주를 미뤄야 했습니다. 덕분에 (7월25, 26일치)를 통해 먼저 인사를 드렸지요. 그는 이스라엘에 또 한 번 이를 갈았습니다. 인터뷰 일정이 잘 안 잡혀서 그랬습니다. 전에 만나던 헤즈볼라 군사조직의 주요 인사들과 연락이 안 된다는 겁니다. 휴대폰마다 꺼져 있더랍니다. 이스라엘군의 위성 추적을 우려해서입니다. 따지고 보면, 내심 더 많은 헤즈볼라를 취재하길 바라는 제 마음이 못됐습니다. 그건 목숨을 건 접촉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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