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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넌센스] 청장님도 박사님도 명예살인?

등록 2006-01-06 00:00 수정 2020-05-03 04:24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또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의붓딸의 부정을 의심해 의붓딸을 살해했다. 아버지는 “어린 딸들도 자라나면 의붓딸처럼 행동할 것으로 생각해” 친딸 3명도 흉기로 죽여버렸다. 파키스탄에서는 1년에 1천여 명의 여성이 명예살인을 당한다. 독일에서도 최근 9년 동안 49건의 명예살인이 일어났다. 명예살인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남편이 아내를, 아버지가 딸을, 아들이 어머니를, 오빠가 여동생을, 남동생이 누나를 살해하는 행위다. 남성의 명예는 너무나 고귀해서 여성은 강간을 당해도 명예를 더럽힌 죄인이 된다. 혹자는 반박한다. 명예살인은 이슬람의 율법이 아니라고. 아랍의 악습일 뿐이라고. 테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안다. 이슬람은 명예살인을, 테러를 가르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테러범, 명예살인범의 절대 다수는 무슬림이다. 슬픈 현실이다. 살인은 문화적 다양성으로 용인될 수 없는 행위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면 찍으면 ‘남’이 되는 사연처럼, ‘인권국제주의’라는 단어에 순서 하나만 바꾸면 ‘인권제국주의’가 된다. 인권제국주의의 칼날을 숨기고 있어도, 인권국제주의는 피할 수 없는 원칙이다. 문화적 다양성의 품은 마냥 넓지만은 않다. 이슬람의 명예살인은 이슬람의 명예마저 살인한다.

한국에서도 명예살인이 일어났다. 경찰은 농민의 목숨을 빼앗았고, 경찰청장은 농민의 명예마저 짓밟았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불법 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행사”라고 농민의 명예를 확인사살했다. 경찰폭력은 정당방위였고, 자신은 폭력시위의 희생양이라는 말씀. 말씀을 시어로 옮기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가 된다. 최근 윤동주파 시인들이 대거 등장했다. 아시다시피, ‘황구라’ 박사님도 초췌한 얼굴로 병상에 누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절창하시지 않으셨던가. 허 청장은 ‘오빠생각’이라는 시도 지으셨는데, “새해에는 목소리 큰 사람이 국민의 고막을 찢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주옥같은 구절이 빛난다. 그리고 허 청장도 황 교수처럼 “국민 여러분의 지지에 감사한다”는 겸손한 마지막 구절을 남기셨다.

한편 한국에서 명예살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농사꾼이 아니라 농사꾼의 아들인 황우석 교수다. 누군가 자신의 줄기세포를 바꿔치기해 자신의 명예를 살해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아무리 시를 지어도 억울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어 검찰에 간곡히 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그가 오히려 국민의 명예를 살해했다는 반감이 드높다. 그의 ‘새끼’들도 명예 찾기에 나섰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밝힐 (갑자기 한국 드라마 같다) 생모 찾기에 나섰다. 언젠가 한국방송의 <꼭 한번 만나고 싶다>에는 ‘영롱이의 엄마를 찾습니다’ 편이 방송될 예정이다. 스너피도 질세라 문화방송의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다. 스너피 편의 제목은 ‘지금 만나러 개시장으로 갑니다’. 혹시 영롱이와 스너피는 이복남매가 아닐까? 미안하다,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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