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보드래/ 서울대 강사·국문학과
분열증이다. 한편에선 아이 뒷바라지에 목숨을 걸고, 한편에선 점점 더 많은 수가 아이를 버린다. 조기교육이다 유아용 명품이다 떠들썩한 한편에는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한 채 시들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다른 문제인가? 각각 계층화되어 따로 분석되는 이들 현상은, 그러나 종종 겹쳐 보인다. ‘일부 상류층’과 ‘벼랑에 내몰린 빈곤 가정’, 그리고 그 사이의 광범한 ‘중산층’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각각 다르게 똑같은 문제에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다. ‘우리’는 생명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중산층스런’ 지옥
아이 한둘 갖고 웬 야단이냐며 지금 60~70대쯤은 혀를 쯧쯧 찬다. 우리 땐 서넛 네댓 되는 애들 잘 키워냈느니라. 군식구 많고 살림 힘들었건만. 지금이야 편한 게 좀 많으냐. 그렇지만 소아과 대기실에서 만난 아이엄마는 “아휴, 애 키우는 게…” 하다가 단박에 눈이 새빨개진다. 얼른 고개를 돌리지만, 딱해라,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하루 종일 열 몇 평짜리 공간에서 애와 씨름을 해대겠지. 울며 뻗대는 아이 안고 “왜 이러는 건데? 응, 왜 이러는 거니?” 하다 울음을 터뜨리기도 할 게다. 누구도 ‘집안의 존재’로 키워지지 않는 요즘, 출산과 더불어 갑자기 ‘집안의 존재’가 되라는 건 가혹한 요구다. 기댈 수 있는 손길이 드물기에 더욱 그렇다.
육아는 ‘일하는 엄마’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업주부들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아이라는 존재 앞에 당황한다. 새끼는 사랑스럽지만, 그에 못지않게 공포스럽기도 하다. 달리 아이를 얼러줄 사람도, 아이를 풀어놓을 골목길도 없기에, 엊그제까지 거리를 활보하던 팔다리에는 아이 하나도 너무 버겁다. 순간순간 아이를 떼내고 밀쳐버리고 싶지만, 도망칠 곳은 없고, 죄책감만 깊어질 뿐이다. 이 곤경 속에서 질식해버리는 사람도 있다. 혹은 우울증에 빠지고, 혹은 분노를 터뜨리고, 혹은 아이를 학대하거나 자신을 학대한다. 환각 속에서 아이를 살해한 선배 이야기를 들은 것도 벌써 여러 해 전 일이다. 2년여 전 개봉한 영화 <4인용 식탁>의 현실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지도 모른다.
육아의 최전선에서 엄마들은 그렇게 병들어간다. 초기의 곤경을 넘기면, 불안과 죄책감과 피해의식은 곧잘 집착과 지배욕으로 변질된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병든다. 버림받지 않은 아이라고 해서 방심하지 마시라. 모든 욕망과 에너지를 아이에게 투사하는 부모 아래 또 다른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이 ‘중산층스런’ 지옥 역시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엄마들을 질책하지도 마시라. ‘모성의 신화’만은 신성불가침으로 남겨두려는 공모 속에서 엄마들이야말로 위기를 견뎌왔으니까. 공공의 연대가 사라지고 핵가족만이 위태롭게 남은 오늘날, 병은 너무도 당연한 징후이니까.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자
보육시설을 확충하겠다는 공약은 어쨌든 반갑다. 24시간 보육시설이 늘어날지 모른다는 것 역시 반가운 소식이다. 사적인 해결책은 진작 한계에 부딪혔으므로, 당연히 공공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그러나 우리가 부딪혀 있는 문제가 정말 ‘아이를 사랑하지만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의 문제일 뿐인가? 부모가 있다면 아이들은 안전할까? 상처 입히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누구나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기 마련일 터, 그렇지만 그럴 때 바라볼 수 있는 다른 관계와 가능성이 있는지는 중요한 문제다. 가족이든 친구든 다른 공동체든, 우리에겐 우리 스스로 창출해내는 즐거운 연대가 필요하다. 삶이 쪼그라드는 만큼, 아이들도 병들고, 우리도 병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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