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시사 넌센스] 북조선 ‘으리’가 으리으리!

등록 2005-10-27 00:00 수정 2020-05-02 04:24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세상에는 짐작과는 다른 일들이 적지 않다. 죽음의 이유도 그렇다. 얼마 전 중년 사나이가 숨졌다. 부인과 아들·딸은 6년째 미국에 살고 있었다. 언론은 그에게 ‘기러기 아빠’의 이름을 붙였다. 게다가 그는 원룸에서 숨진 지 5일 만에 발견됐으니 서글픈 드라마는 완성된다. 정말 그럴까? 그의 이름은 정말 기러기 아빠일까? 기사의 구석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경찰 조사 결과 숨진 ㄱ씨는 평소에도 술을 많이 마시고 담배도 하루에 두 갑 이상 피웠으며, 두 달 전부터는 고혈압 약을 복용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죽음은 고혈압 환자의 죽음, ‘골초’의 죽음일 수도 있다. 혹은 알코올중독이 주요 원인일 수도. 사무실 동료는 “저녁식사 대신 막걸리 등으로 속을 채우는 것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단다. 사회는 중요시하는 가치의 위계에 따라 사람의 죽음을 해석한다. 한국에서 청소년의 죽음은 학생 신분으로, 어른의 죽음은 가족의 틀로 해석된다. 이처럼 죽음의 해석에는 성적지상주의와 가족주의가 뒤집혀 투영돼 있다. 아이들은 성적이 아니면 자살할 이유가 없다, 어른은 가정사에 대한 고민으로 죽는다. 이런 고정관념이다. 여고생 두 명이 손을 잡고 옥상에서 뛰어내려도, ‘성적 비관’만 생각하지, ‘성적 정체성 비관’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의 비명은 제 울림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넌센스다. 잘못 쓰인 묘비명에, 제 이름을! 그래야 지금 아우성치는 저 비명을 제대로 들을 수 있으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남성’ 명사다. 강성대국의 강한 남성성을 확인하는 담화문이 나왔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가 현대아산을 훈계한 담화문이다. 담화문은 “배은망덕”이라는 ‘막말’을 써가면서 ‘의리’와 ‘신의’를 저버렸다고 훈계했다. 아, 의리와 신의! 남조선에서는 사어가 돼가는, 일부 하위 집단(이른바 ‘형님들’)의 은어가 돼버린 말이, 공식 담화문에 등장한 것이다. 협박조 훈계는 계속됐다. “현대 상층부가… 옳은 길에 들어선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금강산 관광의 넓은 길을 열어주는 아량을 보이게 될 것.” 아량, 형님들은 마음도 넓으시지. 말만 잘 들으면 떡고물을 주겠다는 말씀. 그런데 북조선은 김운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을 왜 이렇게 이뻐하시는 거야? 누구 아는 사람? 그리하여, 북핵 문제도 낙관한다. 미국의 협박 외교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통한다. 원래 마초는 마초를 알아보는 법이다. 형님들, 으리!

포털 사이트의 ‘황당 뉴스’에서 이런 제목을 봤다. “젱킨스, 북 당국, 섹스 월 2회 명령.” 젱킨스는 미군 탈영병으로 입북했다가 일본으로 돌아온 인물. 처음엔 월 2회로 제한해서 괴로웠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기사를 보니, 북한 당국이 결혼 전에 북한 여성 1명과 섹스를 하도록 했는데 명령을 어겼을 때는 구타를 당했다는 주장이었다. 맥락상 하기 싫었다는 말씀? 정말? 젱킨스, 왜 맞았다는 거야? 안 해서? 너무 해서? 뭐야? 정말 황당하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