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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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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김 일병이 쏜 정동영의 꿈이여!

등록 2005-06-28 00:00 수정 2020-05-02 04:24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김 일병은 정동영을 쏘았다? 김 일병이 던진 수류탄과 난사한 총탄은 동료 부대원만 숨지게 하지 않았다. 그가 쏜 총탄의 파편은, 누군가 무심코 던진 돌에 엉뚱한 개구리가 맞아죽듯, 하늘을 날고 있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다. 알다시피, ‘6·17 정동영-김정일 면담’으로 정 장관은 모처럼 만면에 웃음을 띤 채 하늘을 날고 있었다. 오죽하면 “미스터” 김정일이 정동영 장관에게 오찬장에서 “잘생긴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얼굴이 좋은지 모르겠다”고 농담까지 했겠는가? 통일부 장관이 된 뒤 북한 방송에서 최고로 쳐준다는 “미스터”라는 존칭 한마디 없이 “정동영이”로 불렸던 간난고초의 시절을 한꺼번에 보상받을 절호의 기회였다. 무엇보다 대권주자로서 독주 체제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였다. 면담의 효과가 적어도 일주일은 간다. 세간의 평가였다. ‘가끔은 아니 오랫동안 주목받는 생이고 싶었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바람은 김 일병의 총탄으로 이틀 만에 날아가버렸다. 그의 한여름밤의 꿈은 산산조각났다. 산산이 부서진 꿈이여! 어디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다. 이렇듯 6월19일 경기도 연천에서 터진 수류탄 한방은 서울 세종로의 장관의 인기도 날려버렸다. 이런 걸 나비효과라고 하나?

<조선일보>는 김 일병을 쏘았다? <조선일보>는 20일치 신문에서 김 일병의 이름도 ‘까고’ 그의 얼굴도 ‘깠다’.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아주 간단한 기술적 처리 방법인 모자이크 처리도 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뿐 아니라 일부 언론도 ‘친절하게’ 김 일병의 이름을 ‘풀네임’으로 쓰고 있다. 솔직히 나도 김 일병의 풀네임이 궁금하다. 그의 면상이 보고 싶다. 하지만 친구가 그랬다. 보고 싶은 얼굴 다 보고, 궁금한 사람 다 알고 살 수 없는 노릇이라고. 전쟁터의 적군에게도 인권은 있고, 살인 혐의자의 인권도 인권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아무리 고치고 싶어해도 대한민국 헌법은 아직 ‘형사 피고인은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은 아직 ‘헌 법’이 아니다. 아부그라이브의 고문과 <조선일보>의 얼굴 공개는 그리 멀지 않다. 아닌가? <조선일보>는 김 일병의 인권을 쏘았다. 참, 이름 사진 공개는 한번 밉보인 놈은 끝까지 ‘조지는’ 그 신문의 근성 때문인가?

세월이 흘러도 개그는 남는다. 또다시 YS(‘아이에스’) 선생님의 연설 능력이 화제다. 원로 성우 고은정씨가 한 라디오 방송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반벙어리도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걱정했다”는 직언을 서슴지 않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 원로성우는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연설 때 10분간 113번이나 발음이 부정확했다”는 생생한 증언도 했다. 그는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국가원수로 무난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아직도 그의 연설은 생생하다. 어쩌다 관광공사를 “간강공사”로 발음하는 사람을 볼 때면, 아직도 “학실히” “아이에스” 선생님이 생각난다. 안 좋은 기억은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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