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시사 넌센스] 미구기, 단무지 추가는 없다

등록 2005-05-25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참, 낯짝도 두껍다. 사람이 망가지다 보면 끝이 없다. 아들을 자기 학교에 입학시키려고 시험 문제를 몰래 빼냈다가 들통난 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김아무개(44)씨가 “그래도 파면은 너무하다”며 학교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자는 지난해 7월 학교 입학과장으로 있으면서 출제위원과 짜고 영어시험 문제지를 주고받았다가 서울 서부지법에서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 판결을 받았다. 김 교수, 내심 ‘정직 3개월’쯤의 ‘중(?)징계’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우리의 김 교수, 따지고 보면 억울하다. 서울 서대문구청의 ㅅ국장. 그는 서기관 승진을 위해 뇌물 3천만원을 쓴 사실이 들통났지만 ‘정직 3개월’ 처분을 받는 데 그쳤다. 그냥 뭉개고 넘어가려던 서울시는 1년에 걸친 ‘전공노’의 투쟁에 못 이겨 지난해 8월 ‘면직’ 결정을 내렸다. ‘면직’은 퇴직금은 고스란히 돌려받는 데 견줘, ‘파면’은 반밖에 못 받는다. 짝짝짝, ㅅ국장의 판정승! 김 교수, 공무원도 아닌 ‘주제’에 답안지 빼돌리는 중죄를 짓고도 어찌 살아남길 바라겠는가. 뽀너스! 그렇다면 ㅅ국장이 뇌물을 건넨 사람은? 1번 구청장, 2번 구청장 비서. 정답은 ‘2번’. 비서는 잘리고 구청 앞에서 밥집을 차렸다는데, 장사가 무지 잘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세상은 요지경이다.

‘미아리’의 수난시대다. 3월27일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인 ‘미아리 텍사스’에서 난 불로 성매매 여성 4명이 숨진 데 이어, 성북구청은 아예 ‘미아리’란 이름을 지도에서 파내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이를 위해 기자들에게 돌린 보도자료 이름도 귀엽다. “과연 미아리가 사라질까?” 글쎄, 사라질까? 알 수 없다. 성북구 얘기는 ‘미아리’란 이름이 들어간 구 안의 지명을 시민 공모를 통해 미래 지향적인 이름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대상은 미아로·미아리고개·미아사거리·미아리구름다리 등이다. 이름을 바꾼다고 비루한 생의 모습이 바뀔까? 미아동 주민들은 ‘미아리 텍사스’ 관련 기사가 나간 뒤면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그곳’은 미아동이 아닌 ‘하월곡동 88번지’”라며 기자들의 무지함을 일깨운다. 마을 이름 바꾸다가 서울 시내에 ‘미아’가 단체로 양산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나저나 앞으로 술취한 남성들은 택시기사 붙잡고 이렇게 외치게 생겼다. “꽃동네 텍사스!” 미래지향적인데다, 어감도 좋다.

골목대장 ‘미구기’가 확실히 삐졌다. 우리나라가 사상 처음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지난해에 견줘 8.9% 줄어든 609억원을 줄인 점이 성질을 긁었던 모양이다. ‘미구기’는 그에 대한 첫 번째 보복으로 지난 5월11일 주한미군 공군 한국인 근로자 112명을 해고했다. ‘미구기’는 4월 초에 ‘엄포’를 놓은 대로 앞으로 한국 직원 888명을 추가로 자를 예정이다. ‘미구기’는 “이들을 안 자르면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고 우겼다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구기’는 머리가 나쁜가 보다. 미 2사단 병력 5천여명이 이라크로 차출돼 병력 규모가 줄어든 점이나, 우리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서 열심히 몸 대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평소에 자장면 3만7천 그릇 시켰는데, 5천명 줄었으면 3만2천 그릇어치 돈 계산만 해도 되는 것 아닌가. 비겁하게 철가방을 1천명이나 자르다니, 쪼잔함이 하늘을 찌른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멀쩡한 사람 수십만을 죽이는 통 큰 모습만 봐오던 우리 눈에 ‘미구기’의 이런 모습 솔직히 당혹스럽다. 자고로 쪼잔함에는 쪼잔함으로 맞서야 하는 법. 각오해라 ‘미구기’! 앞으로 단무지 추가는 없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