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문학비평가
이제 완연한 봄이다.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유난히 싸늘하던 올봄 날씨도 4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고유의 봄기운을 회복해가고 있다. 어떠한 기상이변도 봄·여름·가을·겨울로 이어지는 사계절의 순리를 거스르지 못하리라. 직업과 지역, 취향에 따라 봄을 느끼는 징후나 이미지는 차이가 날 것이다. 여대에 근무한 지 올해로 10년이 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여대생들의 옷차림과 캠퍼스의 다양한 꽃나무들이 무엇보다 봄을 먼저 느끼게 만드는 전령사가 아닌가 싶다.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그들의 옷차림과 표정에서 나는 젊음의 역동성을 느낀다. 그 옷차림은 자신감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월드컵의 우물에서 근현대사의 바다로
그러고 보면, 486세대인 나의 대학 시절은 캠퍼스의 봄을 향유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20여년 전 그 봄날은 동시에 저항과 수난의 상징이기도 했다. 집 근처에 화사하게 피어 있는 목련을 곁눈질하며 학교로 가면, 누군가가 제적됐다는 소식, 선배가 구속됐다는 소식, 또 누군가가 분신 자살했다는 소식이 늘 들려왔다. 이러한 우울하고 비장한 분위기 속에서, 또 사복을 입은 전경이 가득 찬 캠퍼스에서 봄꽃의 아름다움을 차분히 감상할 여유는 없었다.
나는 너무나 밝은 표정으로 꽃나무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 이 시대의 여대생들을 보면서, 그들의 생기와 평화를 진심으로 부러워한다. 새 봄의 캠퍼스에는 학생시위도, 대자보도, 정치집회도, 사복 경찰도, 자본론이나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없다. 대신 캠퍼스를 채우는 것은 다양한 동아리 모집이나 실용 영어회화 광고, 각종 공연 및 영화 상영 소식, 리더십 관련 현수막,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들이다. 이런 변화는 필연적이며, 어떤 측면에서는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탈정치·탈역사의 흐름에 서 있는 그들도 이번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난번 수업시간에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역사·사회적 사건은 무엇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가치관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예상대로 월드컵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해찬 교육부 장관의 파격적인 교육개혁, 대통령 탄핵, 미군 장갑차에 치여 여중생이 사망한 비극, 이라크 전쟁 등 당대적 사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상당수의 학생들이 역사와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그들이 직업 체험해보지 못한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모든 학문이 역사적 성찰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물론이거니와, 최근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현안인 독도 분쟁만 하더라도 그 연원을 정확하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한-일 근현대사에 대한 고도의 역사적·인문학적 통찰이 수반된다.
등록금 인상 투쟁 이외에는 별다른 이슈가 없던 대학가에서도 중국처럼 거센 시위는 없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독도 문제와 연관된 주장들이 게시판에 등장했다. 이번 독도 및 일본 교과서를 둘러싼 한-일 및 중-일간 분쟁은 이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한국 근현대사, 넓게는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광범하게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즉, 1905년의 러일전쟁과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 야욕, 을사보호조약 그리고 식민지 시대, 난징 대학살, 8·15 해방의 의미와 한계, 원폭 투하와 일본 피해의식의 근원,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의미 등에 대해 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자체가 현대사 공부가 되는 셈이다.
나는 지금 민주화가 선사한 캠퍼스의 봄날을 발랄하게 향유하고 있는 우리 시대 대학생들의 자신감이 이러한 역사적 성찰을 통과한 연후에 더욱 단단한 내적 성숙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이 찬란한 봄날에 문득 든 생각이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특검, 윤석열 징역 10년 구형…체포 방해·직권 남용 등 혐의 [속보] 특검, 윤석열 징역 10년 구형…체포 방해·직권 남용 등 혐의](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6/53_17667151619828_20251226500870.jpg)
[속보] 특검, 윤석열 징역 10년 구형…체포 방해·직권 남용 등 혐의

회사 팔리자 6억4천만원씩 보너스…“직원들에 보답해야지요”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5/53_17666328279211_20251225500964.jpg)
건강검진 정상인데, 왜 이렇게 어지럽고 머리가 아플까? [건강한겨레]
![[단독] 정희원 “살려주세요”…성희롱 카톡 보도 전날, 고소 여성에 문자 [단독] 정희원 “살려주세요”…성희롱 카톡 보도 전날, 고소 여성에 문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6/53_17667159098175_9717667159021178.jpg)
[단독] 정희원 “살려주세요”…성희롱 카톡 보도 전날, 고소 여성에 문자

민주 “김병기, 국민께 진심 어린 사과가 우선…사안 중하다”

믿고 샀는데 수도꼭지 ‘펑’…쿠팡 책임 없다는 ‘판매자로켓’에 소비자 끙끙

홍준표 “통일교 특검 하면, 이재명 정부 아닌 국힘 타격…정당해산 사유 추가”
![서학개미들이여, 쿠팡 주식을 사자 [뉴스룸에서] 서학개미들이여, 쿠팡 주식을 사자 [뉴스룸에서]](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5/1225/20251225500099.jpg)
서학개미들이여, 쿠팡 주식을 사자 [뉴스룸에서]
![검찰 ‘통일교 팝콘각’ [한겨레 그림판] 검찰 ‘통일교 팝콘각’ [한겨레 그림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25/53_17666611931056_20251225502187.jpg)
검찰 ‘통일교 팝콘각’ [한겨레 그림판]

“김정은 영도에 풍작”…윤석열 정부는 왜 노동신문 기사를 공개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