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배 기자/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marcos@hani.co.kr
인터넷상 글쓰기는 어디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유흥업소 접대부 같은 여성 아나운서”라고 비하했다가, 모욕죄를 적용받아 벌금 200만원에 지난 4월13일 약식기소됐다. 검찰은 “전파 가능성이 있고, 불특정 다수가 인식할 수 있어 사적인 일기장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3월31일 ‘동작구 초등학교 3년차 5학년 담임 여교사인데, 촌지는 당연하다’는 투로 거짓 글을 쓴 ‘가짜 촌지교사’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최근 입건됐다.
그러나 교육계에 씻을 수 없는 불신과 상처를 남긴 행위가 실제로 형사처벌될지는 미지수다. 고려대 하태훈 교수(형법)는 “집합명칭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고려할 수 있지만, 피해자를 특정하기에는 규모가 크다”며 “‘경찰이 다 썩었다’는 비난을 했다고 처벌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연세대 박상기 교수(형법)도 “동작구에 있는 교사 모두가 피해자라고 보기에는 특정성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 동작구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는 19개교 860명에 이른다. ‘3년차 여교사로 5학년 담임’은 아예 없다. 서울 동작구 교사 등이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도 아니어서, 민법상의 손해배상 등도 어렵다.
그러나 검찰은 “명예훼손 피해자가 동작구 초등학교 교사 전체라고 특정할 수 있다”며 “‘동작구 초등학교 교사들이 촌지를 받는구나’라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반의사불벌죄’인 명예훼손죄는 친고죄와 달리,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적극적 요청이 없으면 처벌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법적 책임까지 묻는 것은 가혹하다’는 의견이다. 사이버문화연구소 라도삼 연구원은 “파장을 예측하지 못한 한 개인에 가혹한 법적 책임을 묻기보다는 자율적인 정화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책임한 언론이 파장을 키웠고, 도덕적 비난으로 이미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졌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하지만 연세대 박상기 교수(형법)는 “공적인 인물이나 일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허위 사실을 근거로 비방하는 행위는 처벌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 동작교육청 관계자도 “거짓 글로 교사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는데도 처벌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특정 집단의 명예가 훼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사이버상의 명예훼손 등에 대한 처벌규정 등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사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가짜 촌지 교사’ 사건은 인터넷 글쓰기의 책임을 잊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멋대로 자판을 두드린 뒤는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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