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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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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권왕국 세우려 연방정부 해체 나선 ‘1등 갑부’

트럼프 등에 올라타고 ‘정부효율부’ 손아귀에… 본인 기업 감독기관부터 폐지 나설 듯
등록 2024-11-29 20:35 수정 2024-12-03 11:58
2024년 10월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연단에 오른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뜀뛰기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4년 10월5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연단에 오른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뜀뛰기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둔 미국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인물은 단연 일론 머스크다. 2024년 미국 대선 기간에 무려 2억달러(약 2800억원)를 쏟아부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 된 그는 차기 행정부에서 이른바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을 맡게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은 머스크가 꿈꾸는 미국은 어떤 나라일까?

일론 리브 머스크는 1971년 6월28일 남아프리카공화국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났다. 캐나다 태생 어머니 덕분에 캐나다 국적을 얻은 그는 1990년 온타리오주 퀸스대학에 진학했다. 2년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으로 옮겨온 그는 물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이후 실리콘밸리로 이주한 그는 인터넷 지도서비스 업체 집투(Zip2)를 공동 창업했다. 애초 그는 스탠퍼드대학 재료공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할 예정이었지만, 학교 대신 창업을 택하면서 학생비자가 만료된 상태였다. 워싱턴포스트는 10월27일 “불법 이민자 추방을 공언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인 머스크가 불법 이민자로 경력을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불법 이민자 출신의 불법 이민자 추방 동조

1999년 2월 머스크는 컴퓨터업체 컴팩에 집투를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무려 3억700만달러, 이 가운데 머스크의 지분은 2200만달러였다. 한 달 뒤 그는 온라인 금융서비스 업체 엑스닷컴을 창업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사상 첫 온라인뱅킹 업체 중 하나였던 엑스닷컴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2000년엔 온라인 송금서비스 페이팔을 운영하는 콘피니티와 합병해 사세를 더욱 키웠다.

2002년 페이팔이 전자상거래 업체 이베이에 매각됐다. 페이팔 최대 주주였던 머스크는 매각대금 15억달러 가운데 1억7600만달러를 챙겼다. 두 차례 창업과 매각을 거치며 확보한 자금을 바탕으로 그는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 로켓 개발업체 스페이스엑스(X), 위성통신 업체 스타링크, 인공지능 업체 엑스에이아이(xAI), 소셜미디어 업체 ‘엑스’(X, 옛 트위터) 등으로 구성된 ‘머스크 제국’을 건설해냈다. 경제 전문 매체 포브스는 2024년 11월 현재 머스크의 자산을 3232억달러(약 451조원)로 추산했다.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과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보다 약 1천억달러가 많은 세계 1위 자산가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2024년 11월19일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에 자리한 스페이스엑스 로켓 발사장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주변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가 2024년 11월19일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에 자리한 스페이스엑스 로켓 발사장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주변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애초 그는 정치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정치자금도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에 두루 지원했고, 2016년과 2020년 대선 때는 민주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과 조 바이든에게 표를 던졌다. 그랬던 그의 정치적 입장이 2022년 4월 무려 440억달러를 들여 소셜미디어 트위터(현 엑스)를 사들인 이후 표변했다. 그는 2022년 11월8일 중간선거를 하루 앞두고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공화당 지지’를 선언했다. 주요 소셜미디어 사주가 특정 정당 지지 의사를 밝힌 건 머스크가 처음이다. 그는 당시 이렇게 썼다.

‘좌파 트위터’ 파괴 위해 트위터 인수

“권력을 나눠야 양당이 최악의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대통령은 민주당이 배출했다. 따라서 의회에선 공화당이 다수당이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당시 그의 트위터 계정 팔로어는 1억1천여만 명이었다. 트위터 인수가 그의 정치적 입장을 바꿔놨을까? 아니면 정치적 입장이 달라졌기 때문에 트위터를 인수한 걸까? 블룸버그 통신은 11월15일 이렇게 지적했다.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것은 사업 측면의 결정이 아니었다. 그가 인수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트위터의 시가총액 80%가 날아갔다. 그는 트위터를 파괴하기 위해 인수했다. 미국의 사회·문화를 바꾸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 이른바 ‘좌파’가 장악한 트위터를 파괴하고, 엑스를 ‘우파’의 사회·문화적 메시지 발신을 위한 근거지로 만든 게다.”

머스크가 트위터 인수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2021년 1월6일 의사당 난입 사건 이후 동결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정을 복원시키는 것이었다. 현재 머스크의 엑스 계정 팔로어는 2억 명을 넘어섰다. 이번 대선에서 머스크는 선거 유세에 적극 참여하며, 젊은 유권자층 공략의 선봉에 섰다. ‘최고의 성공한 자본가’에 대한 동경과 선망은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열기로 이어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머스크의 전폭적인 지지와 막대한 정치자금 지원을 받고 당선됐다. 이 과정에서 머스크는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얻었다. 11월6일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테슬라 등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11월7일 하루에만 머스크의 자산 가치는 260억달러나 늘었다. 트럼프-머스크 관계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사업적 동반자’ 관계인 셈이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주인 일론 머스크가 2024년 10월5일 격전지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나란히 연단에 올라 지지연설을 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주인 일론 머스크가 2024년 10월5일 격전지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나란히 연단에 올라 지지연설을 하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위대한 일론 머스크와 미국의 애국자 비벡 라마스와미가 ‘정부효율부’를 이끌어갈 것이란 점을 발표하게 돼 기쁘기 그지없다. 두 사람은 ‘미국 구하기’ 운동의 정수인 관료주의 혁파, 과도한 규제 철폐, 낭비성 예산 삭감, 연방정부 조직 재정비란 과업을 수행해낼 것이다. 우리 시대의 ‘맨해튼 프로젝트’(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핵무기 개발계획)라 부를 만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1월12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렇게 발표했다. 인도계 이민자 집안 출신인 라마스와미는 제약업체 전문 투자기업을 창업해 막대한 부를 쌓은 인물이다. 그는 2024년 대선 공화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일찌감치 사퇴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11월20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공동으로 기고한 ‘개혁을 위한 정부효율부의 계획’이란 장문의 글에서 “커져만 가는 관료사회는 공화국에 존재론적 위협이 됐다. 작은 정부를 만들기 위한 소수정예 십자군을 모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2.0’ 시대의 청사진이라 할 만하다.

공영방송·국제기구·여성단체 예산 삭감 공언

머스크와 라마스와미는 기고문에서 정부효율부의 3대 목표로 △규제 철폐 △행정절차 간소화 △예산 절감을 꼽았다. 이들은 “이 세 가지 모두 헌법과 법률에 기반할 것”이라며, 조 바이든 행정부 기간에 연방대법원이 내린 두 가지 판례를 제시했다. 웨스트버지니아 대 환경보호국(EPA) 사건(2022년)과 로퍼 브라이트 대 지나 러몬도(상무장관) 사건(2024년)이다. 두 사건 모두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이 아닌 연방정부 조례 등을 근거로 주정부와 사기업을 규제한 게 뼈대인데,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뒤집고 두 사건 모두 연방정부 ‘패소’ 판결을 내렸다.

머스크 등은 두 판례를 바탕으로 “연방정부가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부과한 수천·수만 건의 규제조치를 찾아내 모두 철폐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불필요한 규제가 철폐되면 각 부처의 업무가 대폭 줄어들면서 공무원 정원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효율부 요원이 각 부처에 파견돼 헌법과 법률에 따라 부여된 고유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 인원을 가려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산 절감과 관련해선 “의회가 승인한 예산을 대통령이 모두 집행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는 의회의 예산편성권을 규정한 현행법(1974년)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데, 머스크 등은 보수 6명과 진보 3명으로 이뤄진 대법원의 인적 구성을 거론하며 “대법원에서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피비에스(PBS) 등 공영방송 지원예산 5억3500만달러, 국제기구 지원예산 15억달러, 여성의 자기결정권 옹호단체인 ‘플랜드페어런트후드’ 등 진보단체 지원예산 3억달러 등을 삭감 대상으로 구체적으로 지목했다. 연방정부는 극단적으로 축소된 기능만 수행하고 기업과 부유한 개인은 정부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나라, 머스크가 꿈꾸는 보수·기득권의 천국은 다름 아닌 ‘금권국가’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가 2024년 11월19일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의 스페이스엑스 발사장에서 로켓 발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전기차 업체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가 2024년 11월19일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의 스페이스엑스 발사장에서 로켓 발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REUTERS 연합뉴스


‘정부효율부’는 현재로선 말뿐인 부서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의회를 통과해야 정식으로 내각의 일원이 될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머스크는 “정부 밖에서 조언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법률 개정 절차도, 인사청문회도 피해가겠다는 뜻이다. 장관급 공직자가 되면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관련 보유 주식을 백지신탁해야 한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머스크의 다른 노림수는 없을까?

인사청문회·백지신탁 우회 꼼수도

“연방정부에 딸린 기관만 모두 428개나 된다. 건국 이후 해마다 2개씩 늘어난 꼴이다. 지금도 새로운 기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의 과도한 규제가 기업의 목을 조르고 있다.”

머스크는 11월13일 폭스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한 ‘과도한 규제’의 사례를 살펴보자. 노동부에 딸린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머스크가 소유한 테슬라와 스페이스엑스의 작업장 안전사고와 관련해 조사를 진행 중이다. 독립기구인 고용평등기회위원회(EEOC)는 테슬라 내부의 인종차별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국가노동관계위원회(NLRB)는 스페이스엑스에서 내부 비판적 의견을 낸 직원에게 보복행위를 했다는 의혹에 대한 진상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 밖에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머스크 형제의 주가 조작 의혹을, 환경보호국(EPA)은 스페이스엑스의 로켓 발사와 관련한 오염 문제를, 교통부(DOT)는 테슬라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의 안전 문제를 각각 들여다보고 있다. 이들 모두에 대해 ‘과도한 규제’를 부과하는 ‘폐지해야 할 연방기관’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머스크가 갖게 된다. 이쯤 되면 ‘아메리칸 올리가르히(소련 해체 뒤 국영자산을 불하받고 성장한 러시아 신흥재벌)’란 블룸버그의 표현이 과하지 않아 보인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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