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당길 것인가, 밀 것인가. 하루에도 몇번씩 헷갈린다. 밀어야 할 때 당기고, 당겨야 할 때 밀게 되는 경우 많다. 여닫이 ‘문’ 앞에서 그 시행착오는 끊이지 않는다. 그래서 ‘문’에는 친절한 안내문구가 붙기도 한다. “당기세요.” “미세요.” 오늘도 회사의 현관 ‘문’을 당기며 ‘문’을 향해 잘못 당긴 31년 전의 사건을 떠올린다. 문……. 성은 ‘문’이요, 이름은 세광! 육영수 여사를 총 쏴죽인 건 문세광이 아니라 대통령 경호원일 가능성이 높다는 과학적인 분석결과가 나왔다.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따르면 김재규는 1979년 10월26일 밤 부하들에게 말한다. “내가 쏘면 행동 개시야!”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1974년 8월15일의 ‘그때 그사람들’은 서로 이렇게 다짐하진 않았겠지? “문세광이 쏘면 행동 개시야!”
불온한 상상을 해본다. 미래엔 이런 식의 역사물 CF가 나올지도 모른다. 흑백 화면이 흐른다. 1974년 8월15일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8·15 기념식.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손을 흔들며 등장한다. 대통령의 연설이 시작된다. “우리는 조국의 평화적인 통일을….” 순간 객석에서 한 사나이가 뛰쳐나와 연단을 향해 총을 겨눈다. 탕! 방아쇠를 당기지만 손가락이 미끄러지며 자신의 허벅지를 쏘고 만다. 대통령 경호원은 곧장 그 남자를 조준해 방아쇠를 당긴다. 탕! 그러나 그의 손가락 역시 미끄러진다. 실탄은 엉뚱하게 빗나가고, 육영수 여사가 쓰러진다. 화면이 꺼진다. 남자 성우의 굵은 음성이 내레이션으로 흐른다. “네 손에 기름기를 묻히지 말라.” 얼마 전 체조계의 거센 항의를 받았던 감자칩 광고를 내 맘대로 버전업 시켜본 거다. 과거사의 주인공들에게 감자를 먹이는 나쁜 CF가 될까? 내레이션 카피만 바꿔도 평화 캠페인 CF로 바뀔 수 있다. “네 손에 벌건 피를 묻히지 말라.”
‘잘못 당기면’ 인생을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 수 있을까? 무심코 뒤져본 옛날 신문에서 의미심장한 기사를 발견했다. <동아일보> 1974년 8월21일치 7면. ‘넌센스 역사 발굴’ 차원에서 그대로 전제한다. “二十일 밤 十一시경 청와대 경호실장 옆방에서 경호실 안전과장 河敬大씨(四三)가 고 陸여사의 저격을 막지 못하고 朴鐘圭 실장이 물러난 데 대해 부하로서 책임을 느끼고 할복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쳤다. 河씨는 경호실장과 부속실 가운데에 있는 방에 들어가 미리 준비한 재크나이프로 배를 가르려는 순간 河씨의 거동을 수상히 여겨 뒤따라 들어갔던 경호관 尹孝錫씨가 제지하면서 실랑이를 벌이다 복부 네곳과 오른손 손바닥에 상처를 내고 오른손 새끼손가락 끝부분 一cm가량이 잘려나갔다….” 나는 믿는다. 그가 검지손가락에 묻은 ‘기름기’를 자책해서 새끼손가락과 배에 화풀이하지 않았다는 것을. 더 이상 노코멘트!
설날 아침은 대한민국 어린이들이 ‘당기는’ 날이다. 아니 ‘땡기는’ 날이다. 세뱃돈!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는 ‘자폐증’에 빠졌지만, 그날 철없는 꼬마들은 ‘지폐증’에 빠진다. 돈독이 올라 세배를 3보1배식으로 하는 아이들도 있다. 아홉살이 된 우리집 꼬마는 올해부터 자신이 번 세뱃돈을 엄마에게 맡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어린 놈이 벌써부터 돈, 돈, 돈 한다. 그러지 말아” 하는 나의 지적에 그는 “아빠야말로 돈, 돈, 돈 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뒤의 ‘돈’은 ‘money’가 아니라 ‘don’t’였다. “하지 말아, 하지 말아, 하지 말아” 하는 훈계 지겹다는 거였다. 할 말을 잃었다. 어른들이여 되돌아보자. 자식들에게 ‘말아톤’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하지말아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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