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10%의 비공개 문서 | 이재명

등록 2005-01-25 00:00 수정 2020-05-02 04:24

▣ 이재명/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장


한-일 협정 관련 문서 일부가 공개됐다. 이외에도 정부는 브라운 각서,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육영수 여사 장례식, 포드 미 대통령 방한, 재일교민 북한 송환 관련 문서 등 모두 29건의 기록을 공개했다. 외교문서 공개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외교통상부는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11차례에 걸쳐 5912권의 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는 30년이 경과된 시점인 1974년의 외교문서 23건과 1974년 이전의 외교문서지만 비공개로 유지해오던 문서 6건이다. 한-일 회담 청구권 관련 문서, 브라운 각서, 재일교민 북한 송환 관련 문서 등이 후자에 해당한다.

비밀주의 행정은 국익 핑계 대지만

모두가 공개된 문서의 내용에 관심을 둘 때, 엉뚱하게도 필자의 관심은 비공개된 나머지 문서가 무엇인지에 쏠렸다. 30년이 훌쩍 지난 문서를 이제야 공개하게 된 이유도 궁금했다. 이번 문서를 공개하면서 외교부는 올해 공개 심의 대상 문서의 91%를 공개했다고 밝혔다. 친절하게도 전년 89%의 공개 비율보다 높아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적어도 10% 가까운 문서는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비공개로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그 근거는 국가안보, 국가이익 및 개인의 사생활 침해 등 법률이 정한 공개 예외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국가가 국익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관련 기록을 비밀 혹은 비공개로 유지하는 것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다만 국가가 비밀을 보호함으로써 얻게 되는 법익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유예되거나 침해되는 국민의 알 권리나 피해자의 권익 문제도 적절하게 보장돼야 한다. 이런 이유로 비공개 기록이라 할지라도 30년이 넘으면 원칙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30년이라는 경과규정을 두어 공개로 인한 외교적 문제 혹은 국익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문서가 여전히 공개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정부의 지나친 비밀주의 행정과 비공개 관행 탓으로 볼 수밖에 없다. 혹시 외교부는 비공개된 문서의 비율 10%가 외국의 경우에 비춰봐도 크게 높지 않다고 항변할는지 모른다. 오해 마시라. 문제가 되는 것은 공개된 문서의 질과 공개 여부 결정 과정에 관한 것이다. 30년이 경과되도록 공개하지 않은 문서의 대부분은 주둔군지위협정(SOFA) 교섭, 월남전, 군병력 감축 관련 문서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문서들은 국가의 자존심과 이익, 나아가 직접적 피해자들인 국민들의 권익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공개의 실익이 가장 높다. 정작 국민이 가장 알고 싶어하는 문서는 공개하지 않은 채, 90%의 공개율을 앞세우는 건 아무래도 치졸해 보인다.

한편 이번 한-일 협정 문서 공개는 그동안 정부가 비공개 사유에 관한 추상적인 법 규정을 이용해 매우 자의적으로 비공개 결정을 했다는 비판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에 관련 문서가 공개된 것은 지난해 2월 법원의 공개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좀더 구체적으로 외교부 문서공개심의회의 결정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상실했음을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로 자칫 그동안 정부의 비공개 결정이 모두 사법부의 심판 대상에 오를 수도 있게 됐다. 정작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은 이것일는지 모른다. 이 때문인지 정부는 마치 독자적 판단에 따라 문서 공개를 결정한 것처럼 해명했다. 이미 95년에 비공개 결정을 내렸고, 더구나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까지 한 마당에 내놓은 해명치고는 뻔뻔스럽다.

브라운 각서를 이제야 공개한 것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브라운 각서는 1966년의 문서이다. 따라서 1996년에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더구나 당사자인 미국은 90년대에 이미 브라운 각서를 공개했기 때문에 비공개의 실익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외교부는 베트남전은 계속 이어진 사건이었던 만큼 종전 시점인 1975년을 기준 시점으로 해 2005년에 공개한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들이댔다. 외교부의 논거대로라면 6·25 전쟁 관련 문서도 현재 종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보여준 비밀주의 행정의 극치는 비공개 문서의 목록마저도 비공개하는 것이다. 비공개 결정의 사유가 타당한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리 정부가 어떤 문서를 보유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최소한 언젠가는 그 문서를 공개 받을 수 있다는 기약이라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비밀, 비공개의 장막 뒤에 숨어 얻고자 하는 것이 과연 국익뿐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 그러기에는 아직 비밀이 너무 많다.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