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연/ 소설가
신화 속에서 세상을 받치고 있는 동물 중에는 거북이가 있다. 나는 거북이가 마음에 든다. 물론 문화적 편견이다. 뱀이 머리로 떠받치고 있다면 세상은 그 날렵한 대가리에서 미끄러져 박살이 나버릴 것만 같다. 뱀이 맨 밑인데 거기서 어디로 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거북이는 움직임이 둔하고, 넓적하며 네 다리가 균형 잡혀서 믿음직스럽다. 비록 거북이 등은 각이 졌을지라도, 딴 동물보다야 그 등에 올라타 있는 쪽이 안전하지 않을까.
집 뒷산이 떠받치고 있는 소원들
까무룩 잊었던 신화의 거북이를, 요즘 나는 우리 집 뒷산을 보고 다시 생각한다. 나뭇잎 지고 휑하게 드러난 윤곽이 거북이 등 같다. 나는 그 산이 그토록 작고 낮은 줄 몰랐다. 저녁이면 찬바람을 보내 아파트 단지와 상가의 묵은 공기를 쓸어버리고, 비탈길을 헉헉거리며 오르다 고개를 드는 주민들의 시야를 내리누르던 산이 저것이었나? 태풍 지나갈 때면 밤새 웅웅거리고, 아침에는 도리어 찌를 듯, 넘칠 듯 푸르고 울창해지던 그 산이?
그 산에 그렇게 많은 무허가 건물과 비밀 텃밭들이 있는 줄 나는 몰랐다. 등산로를 걸을 때면 나무들 사이로 수상한 기미가 보여도, 걷는 내가 힘들어 한참 가다 하나씩 있는 것 같았다. 이제 멀리서도 산속을 들여다보게 되니, 그것들은 서로 담장과 울타리가 맞닿을 지경이다. 그리고 그런 집들과 밭에 오가는데도 필요치 않을 셀 수도 없는 길들이, 마치 조금이라도 빈틈을 남기면 안 된다는 계획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치밀하게 산을 뒤덮고 있다.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중학교가 뒷산에 들어선다고, 엘리베이터에 공고가 붙었다. 며칠 만에 산이 4분의 1쯤 날아가고 엊그제부터 다다다다 암반을 뚫는 공사 중이다. 오래 전부터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졌다. 쾌적한 교육환경을 위한 공사이니 불편해도 양해를 구한다는 말도 공고문에 씌어 있다. 학교 공사장 맞은편에는 절이 개축 공사가 한창이다. 그 위로도 절이 세개나 있는데, 얼마 전에 가장 위에 있는 절까지 가로등이 설치되었다. 밤에 산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보인다. 다들 숙원사업이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임대 아파트가 이 자리에 들어설 때, 원래 있던 산의 절반 이상은 날아갔다고 한다. 나는 이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5년 동안 주택청약 통장에 다달이 돈 붓고, 1년 동안 청약 신청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당첨되어, 3년 건축 기간을 기다렸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숙원사업이었다.
등은 자기가 돌볼 수 없는 부위이다. 나이 들어가는 독신들에게 나중에 등 긁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끔찍스럽다. 텔레비전을 보니 곰은 나무 둥치에 등을 문대고, 거북이 또한 산호초에 등을 긁었다. 그래도 나무와 산호초라도 있어야 한다. 혼자서는 등을 어쩌지 못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등에 지고 있는 뒷산은 얼마나 괴로울까. 지난해 장마철에 어머니는 아파트가 무너질까봐 걱정이었는데, 그 걱정이 터무니없지도 않은 것이 아파트를 지을 때 산이 허물어져 인부 두명이 죽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집에 대단한 애착과 자부심을 갖고 있어서, 집에 금 하나라도 갈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뒷산은 등의 상처가 야금야금 커지고, 왕창 번지고, 치명적으로 깊어져도 엎드려만 있을 것이다. 긁지도 문지르지도 못하고 아스팔트로 뒤덮여 죽을 것이다. 이미 산꼭대기에 있는 항공 관련 군대시설까지 시멘트로 길이 포장되었고, 주차장도 없는데 주말마다 자가용들이 줄줄이 올라가 숲과 덤불을 밀어붙이고 있다.
세상을 떠받친 거북이도 등에 올라탄 인간들한테 당하기만 할지 나는 모른다. 우리를 떨쳐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러면 거북이는 죽고, 우리는 올라탈 곳이 없다. 등을 대고 누울 곳도, 등을 세우고 설 곳도 없다. 거북이 등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을 돌볼 수 없다. 거북이 밑에는 뭐가 있지? 또 거북이, 그 밑에 또 거북이, 거북이, 거북이…. 이런 농담도 있다. 하지만 거북이는 한 마리뿐이다. 새해에 모든 이들의 오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빈다. 그리고 소원 성취냐 거북이냐, 우리의 오랜 딜레마도 부디 빠져나갈 길이 보이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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