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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공간] 해는 어디서 뜨는가

등록 2004-12-29 00:00 수정 2020-05-03 04:23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아마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기 전이었던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해가 먼저 뜨는 곳은 어디인지, 또 우리나라에서는 어디인지 관심이 필요 이상으로 높아진 것은. 이번에도 관광 수입 증대를 노린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앞장서 해돋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곳은 의심할 여지 없이 독도다. 뭍에서는 포항의 호미곶과 울산의 간절곶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토끼 꼬리처럼 튀어나온 부분에 있는 호미곶이 더 동쪽인 것은 맞다. 하지만 한국천문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간절곶의 일출 시간이 1분가량 빠르다. 전통적인 해돋이 명소가 몰려 있는 강릉의 경포·정동진, 이름값을 하는 제주 일출봉에 요새는 서해안도 가세했다. 이왕 움직이는 거,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길에서 해돋이를 맞느니 해넘이까지 덤으로 볼 수 있는 서해안으로 오라고 유혹한다.

해돋이를 보겠다고 이름난 곳에 수십만명씩 몰리고 먼 길을 떠나는 수고로움을 참는 것을 보면 그게 장관이긴 한 모양이다. 송강 정철은 에서 “상서로운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듯. 여섯 용이 하늘을 떠받쳐 괴는 듯. (해가) 바다에서 떠날 때는 온 세상이 일렁이더니 하늘로 치솟아 뜨니 터럭도 셀 수 있을 만큼 환하구나”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송강이 본 것 같은 해돋이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열에 아홉은 “에~ 이게 뭐야” 하고 돌아서기 십상이다.

조상들 문투를 빌려 ‘어딘들 어떠하리’ 하는 생각이 든다. 2005년 1월1일 7시26분 독도, 32분 부산, 47분 서울…. 한반도 어디든 8시 이전에 해가 뜬다. 누가 어디서 먼저 보았건, 자신이 본 것은 새해의 새 해다. 동네 뒷산이라도 나쁠 것 없다. 중요한 것은 새해를 맞는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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