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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고문’은 정말 사라져야 하는가

등록 2004-12-29 00:00 수정 2020-05-03 04:23

▣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찜질방’에서 죽은 사람들이 많다. 몽둥이 ‘찜질’은 결코 시원하지 않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우나’ 분위기에서 숨진 박종철, 민감한 신체 부위를 일방적으로 ‘마사지’당했다는 양홍관씨를 떠올려본다. ‘고문’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 화를 낼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때 ‘안기부 악당’으로 활약했던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아니다. 자신의 고용불안을 걱정하는 수많은 ‘고문’들이다. ‘고문’들은 사라져서 어디로 가란 말이냐. 기업들이 구조조정 사냥을 할 때 가장 만만하게 여기는 표적 중 하나는 ‘비상임 고문’이다. 그들은 항변한다. 연륜과 지혜를 갖춘 ‘고문’들의 생계를 ‘고문’하지 말라고. 거꾸로 ‘고문’들을 비난하는 소리도 나온다. 대한민국 사회의 ‘고문’을 자처하는 원로들이 현역 후배들을 정신적으로 ‘고문’했던 과거 때문이다. 그 희한한 시국선언 말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엔 ‘좋은 고문’과 ‘나쁜 고문’이 있다는 말씀이던가.
‘선~물고문’도 ‘물고문’의 한 종류인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조르는 건 ‘좋은 고문’일까 ‘나쁜 고문’일까. 철없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경제적 형편이란 검토 대상이 되지 못한다. 넉넉한 상황이라면 그건 ‘귀여운 고문’이다. 그러나 ‘경제적 고문’을 당하는 조건에서는 ‘노여운 고문’이 된다. 이 경우 부모들은 자식들이 ‘나이 고문’한다고 짜증까지 낼 거다. 왜 젊은 아빠를 60대 할아버지 취급하냐며! 난 산타할배가 아니라며!! 차라리 ‘산(山)타’고 싶다며!!!
어마어마한 선물은 천장을 뚫고 내려온다. 이라크 게릴라들의 A122mm 곡사 ‘화기’가 크리스마스를 앞둔 미군들의 분위기를 ‘화기’애매하게 만들었다. 모술의 부대 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던 병사 수십명이 ‘밥’이 됐다. 게릴라들은 아르빌의 한국군 자이툰 부대에도 비슷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할지 모른다고 한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말할 거다. “X-mas에 너희들을 X야!”
우리 집 꼬마는 요즘 이라크 게릴라들과 취미가 비슷하다. 전쟁놀이를 하고 싶은 그 녀석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총’을 사달라고 난리였다. 멋지게 총 한번 쏴보는 게 소원이란다. 평화적인 장난감이 아니기에, 다른 걸로 사주겠다고 했더니 건방지게 응수했다. “내가 총 맞았냐”며. 그 아이를 말릴 수 있을까? 이라크 게릴라를 만류할 수 있을까? ‘시즌즈 그리띵’(Season’s Greeting)이 ‘시즌즈 골이~띵’ 되는 일이 없기를.
‘지역방송’ 하나가 망했다. 방송위원회로부터 재허가 추천을 거부당한 경인방송(iTV)이 2004년 1월1일부터 폐업을 결정했다. 송년회 같은 데서 이런 말은 하지 말자. “중앙방송 안 들린다. 지방방송 꺼라.” 이건 경인방송을 비롯한 수많은 지역방송 종사자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다. 사실 그들은 ‘지방방송’이라는 말을 안 쓴다. 그런 용어는 몸에 낀 ‘지방’질만큼이나 싫어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그릇된 용어로 탄압을 가한다. 툭하면 “지방방송 볼륨 줄이라”고 하는 거다. 그들은 사회주의자, 아니 사회자인 중앙방송에만 귀기울이라고 강요한다. 허나 ‘중앙방송’은 건조하다. 인간 관계의 정겨운 비화들은 ‘지방방송’을 타고 전파된다. 연말연시 모든 모임의 ‘지방방송’들은 기죽지 말지어다. 그리하여 ‘지역방송’에 힘을 주기를. 그건 그렇고… 는 ‘국영방송’을 2005년에도 죽도록 미워할까? 새해에도 역시 같은 주장을 되풀이할 것으로 예상하는 바이다. “국~영 하지 마! 구~경 못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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