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서울에서 70km가량 떨어진 개성의 리빙아트 공장이 12월15일 생산을 시작했다. 2000년 8월 현대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사이에 개성공단 개발을 합의한 지 4년4개월 만이다. 스테인리스 냄비가 만들어진 뒤 몇 시간 만에 서울의 한 백화점으로 옮겨져 불티나게 팔렸다. 그동안 개성공단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이제 어렵게 ‘옥동자’가 태어나 본격적인 남북경협 시대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직접 가보고 싶었지만 가지 못해 관련 기사와 사진을 유심히 봤다. 굉음과 분진 속에 흰 마스크를 쓰고 작업하는 북한 노동자들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짙은 자주색 옷과 푸른색 옷이 눈에 띄었다. 자주색은 남쪽 기술진이고, 푸른색은 북쪽 노동자라고 한다. 남쪽의 기술과 자본, 북쪽의 노동력과 토지의 결합인 남북경협은 한 공간에서 그렇게 구분돼 있었다.
리빙아트는 10월 말부터 남쪽 기술진 20여명을 파견해 북한 노동자 90여명한테 기술 교육을 실시했다. 공장 가동이 본격화되면 북한 인력을 3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남쪽 기술진은 공장 부근에 있는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임시 숙소에서 1주일에서 보름가량 머문다. 북쪽 인력은 리빙아트쪽이 제공한 차량을 이용해 개성 시내에서 출퇴근한다. 야근을 할 때는 회사가 제공하는 저녁을 같이 먹지만, 점심은 ‘곽밥’(도시락)을 싸와 따로 먹는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일을 하더라도 서로 조심하고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양쪽 인력의 작업복을 구분한 데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작업 도중 문제가 생겨 현장반장 성격의 남쪽 기술진을 급히 찾으려면 눈에 빨리 띄어야 하는 만큼 북쪽 노동자들에게도 더 편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늘색의 한반도기가 널리 쓰이기 전,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 색깔을 달리 칠했던 경험이 떠올라 씁쓸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눈에 띄는 구분, 보이지 않는 벽들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같은 동포끼리 일하다 보니 일이 고된 줄 모르겠다”는 북한 노동자의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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