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수연/ 소설가

(전순옥 지음)를 읽었다. 밥 먹을 때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단숨에 완독했다. 우선 나는 우리의 망각에 놀랐다.
‘중앙정보부가 이승철(청계피복노조 사무국장)을 체포하러 노조사무실에 갔을 때, 그들은 노조 사무실 벽에 걸린 대통령 사진 옆에 전태일의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문제 삼으며 그 사진을 영부인 사진으로 대체하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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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내가 어릴 때 집만 빼고 어디 가나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었고, 고마우신 대통령 덕분에 우리가 북괴의 남침 야욕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줄 알았고, 그가 저격당하자 다 죽는 줄 알고 울었다. 그는 때려서라도 국민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국부(國父)를 자처했다. 그가 오래 살았다면, 그 일족은 아마 왕조가 됐을 것이다. 이승철의 체포는, 앞서 영부인이 어린 노동자들의 교육을 개인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발단이었다. 막상 영부인은 노동교실 개관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노동교실은 중앙정보부에 의해 폐쇄됐으며, 그 이유는 박 대통령 비판자 함석헌을 개관식에 초대했다는 것이었다. 이승철은 경찰에 연행돼 3일 동안 구타를 당했다.
‘구역질 나는 시대’에 묶인 현재와 미래
‘1970년부터 78년까지 국민총생산(GNP)에서 상위 20%가 차지하는 몫은 41.6%에서 46.7%로 늘어난 데 반해… 여성 노동자 계층을 포함한 나머지 최하층 40%의 몫은 19.6%에서 15.5%로 떨어졌다.’(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통계)
1970년대가 눈부신 경제 성장의 시대라고 하지만, 그 시대는 눈부시지 않았다. 경제 성장은 박 대통령의 업적이 아니다. 독재자일지언정 그가 경제만큼은 일으킨 게 아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절규했던 어린 노동자들의 업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그 업적을 가로채어 장기 집권을 도모한 타락한 군인이었을 뿐이다. 나라가 잘돼야 국민도 잘된다는 약속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단 한번도 양보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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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이나 200만 시위대를 죽이더라도 우리에게는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시 경호실장 차지철의 발언이 그 정권의 본질이었다. 구역질 나는 시대였다. 그런데 우리는 그 구역질을 잊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오늘날 유사 박정희들이 정치가로 행세하겠는가.
‘한국노총에 참여하는 것은 모든 애국적 노동자들의 의무이다. 참여하지 않는 자는 공산주의자나 좌파에 동조하는 자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또 나는 현재에 대해 놀란다. 70년대에 정권이 만든 노동단체였던 한국노총에 대해 중앙정보부가 했던 특별 교육의 내용인데, 지금도 같은 말이 되풀이되고 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민주화와 좌파를 혼동하는 무지 또는 선동이 아직도 약발이 먹히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피고는) 사회 불안을 야기했다. 북한은 남한의 사회 불안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피고인은 북한이 그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을 주었다.’ 당시 민주화 운동가에 대한 검찰의 기소문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요즘 대통령 탄핵까지 모든 정책에 반대하여 극심한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야당이 바로 ‘국가 안보와 공공질서’에 대한 위협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 논리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으니, 나로서는 해독 불능이다.
그리고 나는 미래를 생각하면 뜨끔하다. 경제가 위기라는데, 보수적인 경제 전문가와 정치가들이 주장하는 해법은 ‘성장 우선’ ‘친기업적 환경’ 등 70년대 방식이다. 그런데 기업을 살리고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누가 70년대처럼 토끼장 같은 공장에서 폐병에 걸려가며 하루 16시간씩 노동하겠는가? 그게 문제다. 그런 해법을 내놓은 당사자들은 아닐 것이다.
에 인용된 문구를 재인용해본다. ‘우리 중 누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럽고 힘든 일을 할 것인가? 만약 그와 같은 일을 한다면 보수는 얼마나 받을 것인가? 그리고 누가 쾌적하고 깨끗한 일을 할 것인가? 얼마의 보수로?’(존 러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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