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일부 명문 사립대학들이 그동안 공식적으로는 부인해왔던 고교등급제를 실시했음이 밝혀지면서 사회적인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웬만한 한국 사람이라면 교육이나 학벌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정리된 의견을 한두 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기 마련이었다.
평준화와 자율화, 다른 차원이거늘…
은사님 중 한분은 중학교부터 학교별 입시를 부활해야 한다는 얼핏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주장을 꽤 오랫동안 견지하고 계시는데, 논리인즉 빈부격차라는 후천적 요인에 의해 학력 격차가 조금이라도 더 벌어지기 전에 우수한 학생들을 한데 모아 가르치면 과외를 받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으며, 해서 가난한 학생도 명문대학에 쉽게 진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수재로 자라 일류 중·고교를 졸업한 그 은사님의 주장은 평준화에 단련된 내 머리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뜻밖에도 지극히 평등주의적인 정서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진학 문제에 대한 내 학설(?)의 한 가지 모티브는 사실 대학이 아니라 고등학교 진학 당시의 경험이다. 마른버짐 핀 얼굴에 허약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성적도 제법 좋던,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거리는 같은 반 친구가 실업계 고등학교 원서를 쓰고 돌아서면서 “나도 가난하지 않으면 인문계에 갈 수 있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던 오래전 어느 가을날의 중학교 교정. 해서 내가 생각하는 평등주의의 요체는 최소한 돈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는 일은 없도록 사회가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어야 했다.
최근 평준화 내지 대학입시와 관련된 논쟁은 구체적 현상에 대한 구체적 분석보다는 일종의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변질되고 만 느낌이다. 고교등급제 아니라 어떤 관련 사안이 제시되더라도 진보적 언론이나 교육단체가 내놓을 답안이나 그 대척점에 놓여 있는 보수언론, 명문 사립대 관계자,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내놓을 답안은 읽어보지 않아도 뻔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한쪽이 평준화를 유지하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인 것으로 주장한다면, 다른 한쪽은 시장 논리만 받아들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듯이 주장한다. 그런데 이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는 해당 주체들, 그러니까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에게 적어도 당분간은 결코 변화시키기 어려운 구조로 받아들여지는 전제는 사실 간단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좋은 대학’과 ‘나쁜 대학’이 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과 ‘나쁜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삶의 출발선을 결정짓는 중요한 대사이며, 따라서 나는 (또는 내 아이만큼은) 그 출발선에서 뒤처지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결국 공론의 영역에서 무슨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현재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사적 영역에서의 목표는 단 한 가지, 학벌의 위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높이 기어 올라가는 것이다.
우수한 학생(또는 학교)에 가산점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는 결국 학벌은 순전히 스스로의 실력에 따른 정당한 평가일 따름이라는 왜곡된 인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거나, 또는 이미 암묵적으로 그러한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반대로 학벌사회의 구조가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평준화 유지를 지상선으로 내세우는 것은 입시게임에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룰을 애매하게 만듦으로써 패자가 승복하기 어렵게 만드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재산 상태와 부모 직업, 거주 지역과 학력 사이에 이미 밀접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기부금 입학이니 학교 선택의 자율권이니 하는 것은 부와 학력(벌)의 세습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반면, 학벌사회의 전반적인 틀을 건드리지 못하면서 일률적인 내신평가제도를 고집하는 것은 요즘처럼 학벌구조의 세계화 추세 속에서 자칫 눈가리고 아웅하는 역할만 하게 될 수도 있다.
중장기적으로 학벌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노력과 단기적으로 입시게임의 평가기준을 공정하게 가져가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를 하나의 거대담론으로 동시에 해결하려는 것, 이것이 작금의 논쟁에서 양쪽 모두 범하고 있는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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