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방치 속에 손님 뚝 끊긴 동대문 풍물시장… 청계천 노점상들의 울분만 쌓여가
▣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 글 길윤형 기자/ 한겨레 사회부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지난 6월26일 토요일 오후. 서울 동대문시장 안의 ‘풍물시장’은 후끈한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손님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좁다란 통로에 선풍기 하나 없는 좌판들, 뜸한 손님에 부채질로 시간을 보내는 상인들의 끓어오르는 ‘화’가 바로 열기의 원천이었다.
바늘과 실을 꿰는 기계 등을 파는 김동월(65) 할머니는 “요즘엔 하루 만원 벌이도 어렵다”고 말했다. 바깥에 있을 때는 하루 10만~15만원은 팔았다는 할머니는 “어쩔 수 없이 여기서 버틴다”고 했다. 할머니는 청평화시장 근처에서 노점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처럼 노점 정리 때 이곳으로 들어왔다. “오후 5시만 넘으면 사람이 없어. 어두우면 장사도 못하니 그냥 들어가.” 놀랍게도 시장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선풍기도 냉장고도 쓸 수 없고, 밤에도 불을 밝힐 수 없다. 한 상인은 “시에서 해준다더니 다 거짓말이었다. 처음엔 비를 막을 수 있도록 지붕도 해준다고 했다. 우리가 속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좌판만 빽빽히 들어차 불편
지난 1월16일부터 장사를 시작한 ‘풍물시장’은 전국 노점상들의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것 중 하나였다. 철거 위협 속에 방치돼 있는 노점상인들에게 서울시 같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노점상들이 마음 놓고 장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다니 기대할 만했다. ‘동대문 모델’은 잘만 되면 노점상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해법이 될 수도 있었다. 풍물시장은 처음 문을 연 2월께만 해도 평일 3만명, 주말 10만명의 시민들이 몰려와 골동품·공구·음향기기·옷·신발·시계를 구경했다. 상인들은 ‘제2의 황학동’ 추억에 젖었다. 유상오 동대문포럼 대표는 “그때만 해도 노점 좌판 하나에 1천만원씩 프리미엄이 붙었다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선풍기 목걸이 같은 완구를 파는 박홍찬(46)씨는 언제 이곳으로 왔느냐는 물음에 “온 것이 아니라 (예전에 장사하던 곳에서) 쫓겨난 것”이라고 말을 받았다. 그는 “지금은 처음 왔을 때보다 매출이 5분의 1로 줄었다”며 “하루 밥값도 못 번다”고 말했다.
잘나가던 풍물시장에 위기감이 감돌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께부터였다.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뜸해졌던 것이다. 한 공구상 앞에서 한동안 손님들을 지켜봤다. 3천원짜리 전지가위 하나를 사려는 사람이 몇번이나 물건을 만져보기만 하더니 그냥 일어선다. 유씨라고 이름을 밝힌 좌판 주인은 “여기에는 물건을 사려는 사람보다 구경 나온 노인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풍물시장 개설 초기 관심을 갖고 찾았던 손님들이 더는 시장을 찾지 않는 것은 ‘지독한 불편’ 때문이라고 상인들은 말한다. 좌판이 빽빽이 들어차 있어 손님들이 드나들기 어렵다. 화장실에 가거나 밖으로 나가려면 한참을 빙빙 돌아야 한다. 서울시가 그동안 상인들에게 해준 배려는 공동수도 10개와 간이화장실 9개 설치가 전부였다. 그나마 간이화장실은 지난 20일 철거됐다.
그사이 좌판이 많이 늘어난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시가 지난 11월 만든 ‘청계천 노점 일제 정비계획’을 보면 청계천 노점은 △전노련 184개 △전노총련 15개 △서노련 225개 △도깨비시장연합회 150개를 합친 574개로 확인되지만, 6월 현재 노점 좌판 수는 △전노련 491개 △전노총련 170개 △서노련 233개 등 894개나 된다. 힘센 노점상 몇몇이 여러 개의 좌판을 차지하고 있지만, 서울시가 사실상 이를 방치하는 것도 문제다. 상인들은 한 단체의 간부 ㄱ아무개씨가 자기 좌판 4개에다 동생·처제 이름으로 좌판 30개를 손에 넣고 있다고 수근대지만, 서울시는 상인 명부조차 확보하지 못한 채 “그것은 상인들 내부 문제”라는 해명만 되풀이했다.
풍물시장은 상인들에게도 손님들에게도 더는 별 매력이 없다. 손님이 가장 뜸한 평일 오후에는 900여개 좌판 가운데 30%가량이 썰렁하게 비어 있다. 등산복을 파는 전용덕(41)씨는 “손님이 뜸한 평일에는 개시도 못할 때가 많아 장사를 포기한 집들”이라며 “별게 없었는지 2~3월 반짝 특수를 끝으로 손님들이 길 건너 ‘밀레오레’나 ‘두타’ 같은 쇼핑몰로 다 빠졌다”고 말했다.
서울시 “오히려 잘됐다”
다시 거리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 청계천 8가 공구 노점상을 하는 이아무개(34)씨는 지난 4월 말 ‘동대문 풍물시장’을 떠났다. 그는 “처음 운동장으로 들어설 땐 기대가 컸지만 매출이 형편없어 미련이 없다”고 거친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11월30일 서울시의 대대적인 ‘노점상 단속’에 밀려 쫓겨난 청계천 8가로 5개월 만의 서글픈 ‘컴백’이 이뤄졌다. 심장병으로 아픈 어린 아들(7)의 수술비를 만들어야 하는 이씨는 “‘풍물시장을 유명 관광 명소로 만들어주겠다’는 서울시의 사탕발림에 속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풍물시장 상인들은 지난 6월2일부터 20일 넘게 동대문운동장 견인차량 보관소 이용권 문제를 놓고 서울시와 싸우고 있다. 상인들은 “서울시가 ‘동대문운동장 견인차량 보관소(3500㎡)를 노점상들이 추가로 사용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며 “서울시는 상인들이 이 터에 풍물놀이 이벤트 무대를 만들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현재 이곳에 7월부터 운행되는 간선버스 50대가 주차할 수 있는 ‘버스 대기소’를 만드는 중이다. 양현수 동대문 풍물시장 활성화 추진위원장은 “견인차량 보관소 문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동대문 풍물시장’이 개장 5개월 만에 존폐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 더 큰 걱정거리다.
그러나 서울시는 오히려 이런 결과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서울시 관계자는 “청계천 복원공사가 끝나면 이곳에 시민공원을 만들어야 한다. 장사가 잘됐으면 골머리를 썩었을 텐데 오히려 다행”이라며 속내를 드러냈다. 운동장에 갖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청계천 노점상들은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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